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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아줌마 ‘명품 로망’ … 홈쇼핑이 파고들다

중앙일보 2011.09.14 00:46 종합 3면 지면보기
지난달 10일 현대홈쇼핑은 영국 명품 브랜드 ‘멀버리’의 핸드백을 판매했다. 준비한 것은 틸리백(238만원)과 알렉스 오버사이즈백(219만원)처럼 200만원이 훌쩍 넘는 비싼 제품. 명품이라야 수십만원짜리 정도를 팔던 TV홈쇼핑에선 보기 드문 고가의 상품이었다. 예정됐던 방송시간은 단 19분. 그 사이 모두 174개, 약 4억원어치가 팔렸다. 대략 9초당 하나씩 팔린 셈이다.


‘12개월 무이자 할부, 전문 매장보다 싼 값’으로 안방 공략

현대홈쇼핑 측은 평소 알뜰 구매를 위해 TV 앞을 지키던 중산층 주부들이 주로 주문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중산층 주부들의 ‘로망’인 명품을 홈쇼핑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그것도 할부 구매를 할 수 있도록 하자 주문이 쏟아진 것이다. 이 회사는 그 이틀 전 200만원 안팎 하는 프랑스 ‘지방시’ 핸드백 42개를 18분 만에 팔아 치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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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전문 매장에서나 사는 것으로 여겨졌던 명품의 구매 창구가 급속히 넓어지고 있다. 전문 아웃렛은 물론 ‘알뜰 구매’의 상징이던 홈쇼핑조차 앞다퉈 전략 상품으로 명품을 내놓을 정도다. 타깃은 중산층 주부다. 재력 있는 사모님이나 미혼 직장여성들의 전유품처럼 여겨지던 명품이 ‘평범한 아줌마’들에게도 일상용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달라진 명품 소비 패턴이다. 현대홈쇼핑의 경우 2003년 200억원이던 명품 매출이 지난해 750억원으로 세 배 넘게 뛰었다. 이젠 홈쇼핑 채널마다 명품만 판매하는 정규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다. 현대홈쇼핑 정태영 명품 담당 MD는 “최근엔 홈쇼핑 채널끼리 서로 판매하지 않는 명품 브랜드를 런칭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홈쇼핑에서 명품을 구매하는 주부들은 이른바 ‘루이뷔통 세대’들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인터넷과 해외 여행을 통해 10대, 20대 때부터 명품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경제력이 생기면서 홈쇼핑 같은 ‘신 명품 유통 채널’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명품 구매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명품 구매 풍속도 역시 바뀌고 있다. 해외에서 직접 구매하는 효과가 있는 구매 대행 사이트나 중고거래 사이트를 이용하는 건 고전적인 방법에 속한다. 직장인 박모(29·여)씨는 “명품 회사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통하면 직원 할인을 받을 수 있어 종종 사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 얘기로는 다른 직원들도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많이 받는데, 월급 날 주로 물건을 사다 보니 그 회사 월급 날이 매출이 가장 좋은 날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주부 정효정(31)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10만원권 백화점 상품권을 9만5000원에 할인받아 이를 가지고 70만원대의 루이뷔통 지갑을 샀다. 홈쇼핑도 빼놓을 수 없다. 홈쇼핑이 인기를 끄는 것은 상대적으로 값이 싸고 12개월 무이자 할부 같은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고 명품점에 이어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명품 브랜드 가방을 빌려주는 대여점도 성업 중이다. 560만원가량 하는 샤넬 클래식 케이버 가방의 경우 3일 대여료가 12만원 안팎이다. 도난이나 파손 등의 우려가 있어 주민등록증을 대조한 뒤에야 물건을 빌리는 등 절차가 까다롭지만 인기 제품은 없어서 못 빌린다. 명품 대여점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명품을 사기 힘든 대학생이나 젊은 주부 고객이 대부분이고 샤넬 같은 고가의 가방이 인기”라고 말했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프리미엄 아웃렛’ 역시 중산층을 겨냥한 것이다. 프리미엄 아웃렛은 철 지난 명품을 살 수 있는 매장이 대거 입점한 곳이다.



신세계첼시는 경기도 여주와 파주에 프리미엄 아웃렛을 운영 중이고 롯데백화점은 연말께 경기도 이천과 파주에 프리미엄 아웃렛을 개점할 예정이다. 미혼인 중견기업 차장 양모(39·여)씨는 “1년에 두세 번 150만원어치 정도의 명품을 사는데 주로 아웃렛이나 면세점에서 산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김재문 연구원은 “중산층들이 명품 구매 주력 부대로 떠오르면서 코치·MCM처럼 상대적으로 싼 준(準)명품(매스티지) 브랜드가 급성장하는 등 명품 시장에 변화가 생겼다”며 “중산층의 명품 구매 욕구와 구매력이 맞아떨어지는 곳에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최나빈 인턴기자(고려대 노어노문학과)





◆매스티지=‘대중’(매스·Mass)과 ‘명품’(프레스티지·Prestige)의 합성어로 브랜드와 품질은 명품 이미지를 갖추되 합리적인 가격으로 대중화된 상품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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