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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스타인이든 마젤이든 권력이 비대할 땐 비판한다 침묵하면 난 공범이니 …”

중앙일보 2011.09.14 00:23 종합 24면 지면보기



세계 음악거장에 날 세운 비평가 레브레히트



전세계 클래식 거장들을 비판해 온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가 영국 런던의 음악거리인 애비 로드에 섰다. 록그룹 비틀스의 노래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는 “20년 전쯤 이곳에 이사 왔고 앞집 뒷집에 음악인들이 산다. 일터와 집이 행복하게 함께 있는 셈”이라 말했다.





“음악 저널리스트인 노먼 레브레히트가 61세에 세상을 떠났다.”



 음악 사이트 클래식스투데이(classicstoday.com)에 2년 전 올라온 글이다. 필자는 미국의 음악평론가인 데이비드 허위츠. 그는 “클래식 음악의 암울한 예언가였던 이가 자신의 최후를 먼저 맞았다”고 썼다.



 사실 이 기사는 허구다. 음악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가감 없이 내놓는 비평가 레브레히트를 비꼬는 글이었다. 이달 초 런던 애비로드의 자택에서 만난 레브레히트(63)는 “나는 공격 당하는 데에 익숙하다. 하지만 거대한 권력을 허무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브레히트의 손엔 악기도 지휘봉도 없다. 다만 말과 글로 세계 음악계를 들썩이는 ‘뉴스 메이커’가 됐다. 그의 날카로운 독설에 자유로운 음악인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는 영국의 텔레그라프와 BBC 라디오 3 등에서 글과 말로 음악을 전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음악 뉴스가 올라오는 홈페이지(artsjournal.com/slippeddisc)에는 수천 명이 드나들고, 그가 트위터에 남긴 글은 이내 각국으로 퍼진다.



 또 세계적 연주자와 거대 음반사가 그의 글에 반응한다. 2007년엔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을 펴낸 후 음반사 낙소스와 싸움이 붙었다. 음반사 측에서 “다섯 페이지 동안 15 군데 이상이 사실과 다르다”며 출판 중지 신청을 낸 것. 책은 길이 남을 클래식 명반 100장과 함께 사상 최악의 음반 20장을 함께 꼽았다. 번스타인·마젤·하이페츠 등 역사적 연주자들을 무참하게 깎아 내렸다. 유명세만 보고 이들의 음반을 무조건 칭송한 평론가들에게도 일침을 놨다.



 -음악계에 적이 많다.



 “내가 공격하는 사람들은 사실 수십 년 함께 일한 동료들이다. 30년 넘게 음악계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음악 무대 위의 주연은 아니었지만 늘 지켜봤다. 그리고 그들의 권력이 비대해질 때, 태도가 선하지 않을 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공범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내 비판은 언제나 남용된 권력을 대상으로 하며, 무고한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렇게 서로 비판하고 수긍하며 몇 십 년 동안 지내면 양측이 모두 성장해있는 것을 발견한다. ”



 -왜 음악비평가가 됐나.



 “첫 직업은 뉴스 프로듀서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나는 이스라엘로 돌아가 대학에 들어갔지만 2년 만에 그만뒀다. 현지의 지역 방송국에서 전쟁·지진·홍수 등을 취재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계기가 생겼다. 77년 홍콩에 들렀는데 중국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연주하는 TV 화면을 봤다. 문화혁명 직후였고, 역사적인 일이었다. 이제껏 일해왔던 분야인 정치와, 어려서부터 관심이 있던 음악을 엮고 싶었다. 무엇보다 음악에도 ‘왜라는 질문(Why Question)’을 도입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의 첫 히트작은 91년 낸 『거장의 신화』다. 역사적 지휘자들로부터 예술이라는 ‘신화’를 걷어내고 인간을 밝혀낸 책이다. 레브레히트는 “지휘 또한 정치행위라 생각했다. 늘 신비로운 존재였던 이들에게서 권력 관계를 발견하려 했다. 『거장의 신화』는 아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클래식 음악 책일 것”이라 말했다.



 레브레히트의 영역에서 예술이기 때문에 보호받는 것은 없다. 지난해 낸 『왜 말러인가』에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말러에 대해 쓰며 과장된 신화, 미망인 알마 말러의 탐욕 등을 밝혀냈다. “어떻게 보면 내 글은 ‘멜로 드라마(soap opera)’다. 욕하면서도 보게 된다. 모두가 보호해주던 것에 대해 낱낱이 밝히고 현실을 직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소설가다. 최근 세 번째 작품을 탈고했다. “내 삶은 재미있게 구성돼 있다. 비평은 사실에 기반하지만 소설은 완벽하게 판타지다. 음악 비평과 전혀 관계 없는 내용의 소설을 쓰는 데서 알 수 있다. 내 정신 세계는 정확히 양분돼 있다”고 했다.



 온라인은 또 다른 영역이다. 그는 하루 20~30건의 글을 올리는 ‘트위터 단골’이다. 레브레히트는 “확실히 나는 ‘쓰기 중독자’”라 인정했다. 자택의 작업실에 들어가고 나오는 때는 각각 오전 10시, 오후 10시다. 클래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런던=글·사진 김호정 기자



 

◆노먼 레브레히트=1948년 영국 런던 생. 이스라엘과 미국의 방송국에서 정치·국제 담당 기자로 일하다 78년부터 음악비평가로 변신했다. 82년 첫 책을 썼으며 이후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 이브닝 스탠더드와 이탈리아의 음악 매체들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다. 저서는 총 12권. 17개 언어로 번역됐다.

레브레히트의 독설



▶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권력 있는 성악가인 도밍고는 4000만 달러를 웃돌던 쓰리 테너 개런티를 독차지 하기 위해 동료들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2006년 독일 월드컵 기념 콘서트에 쓰리 테너 없이 단독 공연했을 때.



▶ “품위나 예술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놀이터의 아이처럼 와락 달려드는 음악.”



-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에 대해.



▶ “자아도취라는 연못에 빠진 하이페츠가 또 한 명의 하이페츠를 바라보는 음반으로, 이보다 더 나쁜 연주는 상상하기 어렵다.”



-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의 바흐 음반에 대해.



▶ “누가 박자 젓는 사람 때문에 베르디를 보러 가나? 공연은 가수가 하고 나머지는 장식이다.”



-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한 음악상 수상에 대해



▶ “이것은…이것은…스토리다…이것은…이것은…스토리다…이것은…”



-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자서전 출간을 계약한 것에 대해. (글래스가 같은 음형을 반복해 사용하는 작곡가라는 점을 빗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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