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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탄 비행기가 … TV 보며 가슴 무너졌죠”

중앙일보 2011.09.14 00:15 종합 14면 지면보기



9·11 펜타곤 추모현장서 만난 고 이동철씨 부인 이정미씨



11일 워싱턴 펜타곤에서 열린 9·11 테러 추모식에 참석한 고 이동철씨의 부인 이정미씨(앞줄 오른쪽)와 친지들.



미국 해군 군악대가 연주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울려 퍼지자 펜타곤(미 국방부) 서쪽 벽면에 대형 성조기가 드리워졌다. 한 무리의 새들이 추도식장 상공을 선회하자 옥상엔 저격병과 경호요원 10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11일 오전 9시37분(현지시간) 미 워싱턴 펜타곤에 자리 잡은 추모공원에선 조 바이든 부통령과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 그리고 유족 등 16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9·11 추모식이 열렸다. 꼭 10년 전 그 시간, 그 장소였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범들에 의해 납치된 아메리칸항공(AA) 77편은 펜타곤 서쪽 건물 벽면으로 돌진했다. 이 테러로 비행기 탑승객과 펜타곤 직원 등 184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이든 부통령은 추모사에서 “10년 전 테러리스트들이 펜타곤을 공격했지만 그들은 실패했다”며 “그 공격 이후 무려 400만 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군복을 입는 행렬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특히 행사에 참석한 1200여 명의 유족 중에는 고 이동철(사망 당시 48세)씨의 가족도 있었다. 10년 전 그날 보잉사 항공엔지니어였던 이씨는 회사 일로 출장차 LA로 가기 위해 AA 77편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펜타곤 추모공원 내 석판에 적힌 184명의 이름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날 아침 이웃사람이 테러 얘기를 하기에 놀라 TV를 틀었는데 남편이 탄 비행기였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회사 직원들도 ‘연락이 안 된다’고 하더라. 그게 마지막이었다….”



 부인 이정미(52)씨는 1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 한쪽 편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아들, 두 딸과 함께 ‘DONG CHUL LEE’라고 적힌 추모 석판을 만지던 이씨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언론들에서 9·11 특집을 다뤄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지난 10년이 우리 가족에겐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펜타곤 추모공원을 온 가족이 찾은 것도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그 사이 여덟 살이었던 막내딸은 대학생이 됐고, 13살이었던 큰아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컨설팅사인 엑센추어 직원이 됐다.



 올해 9·11 10주년 행사로 떠들썩한 이날이 한국인에겐 추석 전날이었다. 이씨 가족은 추모 예배로 명절을 대신한다고 했다.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이씨에겐 아직도 10년 전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추모 열기 뜨거운 미국=10주년을 맞아 미 전역에선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WTC)가 있던 ‘그라운드 제로’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가 열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정치적 발언은 일절 하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구약성경 시편 46절만을 읽고 단상에서 내려갔다. 다행히도 우려했던 테러는 없었던 9·11 10주년이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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