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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중음악계 천재 김해송을 아십니까

중앙일보 2011.09.14 00:15 종합 28면 지면보기



탄생 100돌 특별전 23일부터



1930~40년대 대중음악계를 이끌었던 음악인들. 왼쪽부터 장세정, 윤부길(윤항기의 아버지), 신카나리아, 김해송, 이난영, 이봉룡(김해송의 처남). [이동순 교수 제공]



올해는 대중음악 작곡가 김해송(1911~?)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는 1930~40년대 우리 대중음악계의 ‘천재 뮤지션’으로 통했다. ‘연락선은 떠난다’ ‘울어라 문풍지’ 등을 작곡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달랬다. 그러나 김씨는 1950년 한국전쟁 즈음 종적이 묘연해졌다. 납북돼 사망했다는 설이 유력했지만, 월북했을 거란 추측도 적잖았다. 전후 한국 정부는 월북 가능성을 이유로 ‘김해송’이란 이름을 봉인했다. 한국 대중들 사이에 그의 이름은 작곡가보다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1916~1965)의 남편으로 더 유명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해송의 음악 세계를 재조명하는 특별전이 열린다. 23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펼쳐지는 ‘가문의 영광: 김해송·이난영 그리고 김시스터즈’다.









김해송·이난영 부부의 자녀들은 김시스터즈(앞줄)와 김브라더즈를 만들어 활동했다. 김시스터즈는 최초의 걸그룹이자 한류의 원조 격이다. [중앙포토]






 특별전 타이틀이 ‘가문의 영광’인 까닭이 있다. 김해송은 1936년 가수 이난영과 결혼했다. 둘은 4남 3녀를 낳았는데, 이들도 가수로 성장했다. 한국 최초의 걸그룹 ‘김시스터즈’가 그의 딸이다. ‘목포는 항구다’를 만든 작곡가 이봉룡(1914~1987)은 그의 처남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보기 드문 명문 음악가 집안이다.



 이 음악 명문가의 가장(家長)이 바로 김해송이다.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1936년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민요·클래식·재즈·트로트 등을 넘나드는 파격적인 선율을 시도했다. ‘연락선은 떠난다(장세정)’ ‘울어라 문풍지(이난영)’ ‘선창(고운봉)’ 등 애잔한 멜로디로 대중의 가슴을 쓰다듬었고, 자신이 직접 부른 ‘개고기 주사’ ‘모던 기생 점고’ 등 해학적인 노랫말로 대중의 어깨를 토닥였다.



 김해송의 음악은 색소폰·트럼펫·트롬본 등 브라스 밴드가 두드러진다. 한국 재즈의 원형이다. 1930~40년대 언론은 김해송을 ‘짜스(Jazz)의 귀재(鬼才)’ 등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실제 ‘다방의 푸른 꿈(이난영)’을 들어보면 그가 이미 1930년대에 블루노트(재즈의 기본 음계)로 가요를 작곡했음을 알 수 있다.



김해송은 1945년 해방 이후 ‘김해송 악단(KPK)’을 꾸렸다. KPK 쇼에는 이난영·장세정·윤부길(가수 윤항기·윤복희의 아버지) 등 당대 스타를 비롯해 훗날 ‘김시스터즈’로 데뷔하는 자신의 딸 둘(숙자·애자)과 조카 민자(작곡가 이봉룡의 딸)가 출연했다.



 이때의 무대 경험이 김시스터즈의 음악적 자양분이 됐다. 김시스터즈는 아버지가 납북된 이후인 1953년 미8군 무대에 데뷔했다. 59년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해 미국의 유명 TV쇼인 에드 설리번쇼에 출연했고, 정식 음반도 발매했다. ‘원조 한류 스타’인 셈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마련한 이번 특별전에는 ‘그대와 나(1941)’ ‘해피엔드(1999)’ 등 김해송의 음악이 삽입된 영화 8편과 김시스터즈의 기록 영상물 1편이 상영된다. 영상자료원 모은영 프로그래머는 “김해송·김시스터즈 관련 영상물을 통해 한국 초기 대중음악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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