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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김

중앙일보 2011.09.14 00:14 종합 29면 지면보기








우리는 일본인과 함께 해초(海草)를 즐기는 드문 민족이다. 조선시대 영·호남 등지에 곽전(藿田)과 태전(苔田)이 있었다. 곽(藿)이 미역이니 곽전은 미역이 출토되는 섬 등을 뜻한다. 미역은 단맛 때문에 감곽(甘藿)이라고도 불렸다.



 바다 이끼, 즉 해태(海苔)가 김인데 빛깔을 따서 청태(靑苔), 또는 자태(紫苔)라고도 불렸다. 미식가였던 허균(許筠)이 『성소부부고(惺所覆<74FF>藁)』의 『도문대작(屠門大嚼)』조에서 ‘호남의 함평·무안·나주에서 나는 김〔甘苔〕이 엿처럼 달다’고 평한 것처럼, 달기 때문에 감태(甘苔)라고도 불렸다. 정약용은 『경세유표』 ‘곽세(藿稅)’조에서 짐(朕), 즉 김이 생산되는 호남 지역에 대해 “둘레가 백여 보에 불과한 총알(丸)만 한 섬에 대해 혹 200~300냥의 세를 징수하고, 10여 보에 불과한 주먹만 한 크기의 돌길이 혹 200~300냥에 매매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 생산지는 땅값이 금값이었다. 정약용은 또 다른 지역의 미역은 한 동(同)에 7냥 반이지만 울산(蔚山) 미역은 10냥에 거래된다고도 말했다. 50조(條)가 1속(束), 50속이 1동(同)이다.



 조선 초의 문신 성현(成俔)은 『용재총화(<6175>齋叢話)』에서 감태(甘苔)보다 조금 작은 것을 매산(<8393>山)이라고 부르는데 구워 먹는다고 전하고 있다. 성현의 친구 김간(金澗)이 절에서 독서할 때 승려를 통해 처음 먹어보고 그 이름을 알았다. 김간이 성현에게 “천하의 진미인 매산구이〔<8393>山炙〕를 아느냐?”고 묻자 성현은 “임금님께만 올리는 것〔御廚之供〕으로서 바깥사람은 맛볼 수 없다”고 답해서 이때만 해도 구운 김이 매우 귀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약용은 ‘곽세(藿稅)’조에서 곤포(昆布: 다시마) 중에 작은 것을 방언으로 다사마(多士麻), 즉 다시마라고 한다고 말했다. 송(宋)나라 서긍(徐兢)이 고려 인종 1년(1123)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국 후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다시마〔昆布〕는 귀천 없이 다 잘 먹는다”고 전해 김과 달리 고려 때부터 누구나 즐겼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체국 쇼핑의 추석 선물로 김이 가장 큰 인기였다는 소식이다. 서긍은 “고려 풍속에 양과 돼지가 있는데, 왕공(王公)·귀인이 아니면 먹지 못하고,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海品〕을 많이 먹는다”고 전하고 있다. 가난한 백성들이 먹는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왕공·귀인들은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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