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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탐사] MB의 상상력과 레임덕

중앙일보 2011.09.14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보균
대기자




이명박(MB) 대통령은 밀려났다. 추석 화제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났다. 레임덕(권력누수) 상황은 대중 관심에서의 이탈이다. MB의 레임덕이 빨라졌다. 정치 시즌의 조기 개막 탓이다. 하지만 자업자득의 요소가 강하다.



 MB가 그런 상황을 키웠다. MB의 ‘안철수 돌풍’ 진단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고 했다. 그는 “스마트 시대가 왔는데 정치는 아날로그”라고 비판했다.



 지금 정치는 냉소와 환멸 속에 있다. MB의 지적대로다. 그 책임에는 박근혜도 있고 손학규도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정상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정치하는 자리다. 행정의 세계가 아니다.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치의 실패 때문이다. 그 실패의 핵심은 대통령의 정치 실패다.



 정치에 대한 MB의 자세는 간격 두기다. 그는 여의도 정치를 낭비의 대상으로 여긴다. 불신과 변혁의 대상으로 멀리했다. 그는 관전자의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면 대통령의 위상이 올라갈 것으로 믿었다. 어이없는 오산이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공동운명체다.



 통치는 정치다. 국정은 정치 행위다. 정치 드라마의 생산 작업이 통치다. 해외 원전의 수주는 MB다운 업적이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빨리 벗어났다. MB의 치적이다. 하지만 국민적 갈채는 강렬하지 않았다. 정치와 연결되지 않아서다. MB는 그 성취를 정치 드라마로 내놓는 데 소홀히 했다. 정치무대와 통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극적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업적은 대중적 감동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국정은 말의 운영이다. MB는 경축일, 국무회의에서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기억나는 표현은 드물다. 사회적 갈등이 높아지면 국민은 대통령을 쳐다본다. 리더십의 결연한 말을 갈망한다. 정치적 감수성이 넘쳐야 결단의 언어가 된다. 그때의 한마디에 여론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순간이 대중을 집단 장악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MB의 말은 주춤대거나 빈곤했다. 올 들어 강정마을 사태,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논란에서 대통령의 어록은 선명하지 않았다. 거꾸로 MB의 발언은 국정 패주 상황에서 주로 기억된다. 광우병 파동을 떠올리면 된다. MB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통치는 소통이다. 소통은 말의 정치다. MB는 소통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다수 민심은 그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정 혼선 때 뒷전에서 말을 아껴서다. 위기를 정면 돌파하지 않아서다. 그러면 대통령의 언어는 삭막해진다. 대중은 그 갈증을 다른 곳에서 푼다.



 안철수의 청춘 콘서트는 제3의 정치무대다. 안철수는 “지식인은 사회를 위해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무대는 대중의 소통 욕구를 해소해줬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도전의 장으로 축적됐다. 안철수는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 집권세력”이라고 말했다. MB는 초라해졌다.



대통령의 수사학(修辭學)은 정권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한다. MB는 처음에 중도실용을 외쳤다. 그리고 ‘공정사회, 공생발전’으로 바꿨다. 공정·공생은 MB 반대 진영에서 익숙한 용어다. MB의 몸에 맞지 않는다. 어색하면 파괴력이 떨어진다. MB정권의 언어 상징성은 혼란스럽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MB에게 교훈이다. 그는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대통령 출마 경력을 가진 페루의 노련한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가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우리의 삶에서 정치를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국정에서 정치를 외면하면 대가를 치른다. 국정의 생동감은 상실된다. 소통의 역동성은 약해진다.



 대통령의 성공은 ‘일중독’으로만 보장되지 않는다. 예기치 않은 국정혼란을 다루는 데서 성패가 결정된다. 위기는 정치적 상상력으로 극복된다. 그 과정에서 대중의 감동이 터진다. 정치는 상상력의 예술이다. CEO 경영의 세계와 다르다. 과거 대통령들은 상상력의 힘을 알았다. YS의 대담한 상상력은 천부적이었다. DJ는 지적 연마와 단련으로 상상력을 키웠다. 노무현의 상상력은 파격과 변조의 과시였다.



 MB는 임기 종료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공직자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정치와 멀리한 MB의 국정 방식은 레임덕을 재촉한다. 정치적 상상력이 레임덕을 막는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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