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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어머니의 슬픔

중앙일보 2011.09.10 03:00 종합 31면 지면보기








성모(聖母) 숭배는 중세 때 두드러졌던 현상이다. 사람들은 성모에게 기도하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가장 쉽고 가깝고 안전한 길”이라 믿었다. 마리아는 예수가 누구를 위해 죽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였다. 또한 너무나도 지극한 슬픔을 겪었기에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위로해줄 수 있다고 여겨졌다(이진숙, 『러시아 미술사』).



 아들 잃은 여인의 처참함은 성서에 직접적으로 묘사돼 있지 않다. 다만 요한복음 내용으로 짐작할 뿐이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19장 26~27절). 이 몇 줄에서 숱한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종교음악의 정수로 불리는 성악곡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도 그중 하나다. ‘성모애상’이라고도 불리는 ‘스타바트 마테르’는 ‘성모는 서 계시다’라는 뜻.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을 올려다보며 서 있는 어머니보다 더한 비극의 주인공이 있을까. “오! 사랑의 원천인 나의 어머니. 당신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제게도 느끼게 해주세요. 그러면 당신과 함께 통곡하리니.”



 성모의 애상(哀傷)을 형상화한 예술작품 중 최고봉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들을 안은 여인의 절제된 비통함이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 마리아의 왼손은 허공을 향하고 있다. 더 이상 만지지도 보지도 못하는 아들을 대하는 허무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게 14세기 독일의 ‘뢰트겐 피에타’상이다. 성모는 일그러진 얼굴로 상실의 고통을 온통 드러낸다. 절제든 분출이든 슬픔의 질량은 다를 리 없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부르짖으며 분신했던 고(故)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며칠 전 아들 곁에 묻혔다. 그는 어머니의 슬픔이 어떻게 승화될 수 있는지를 온 생애에 걸쳐 보여줬다. 단장(斷腸)의 애통함을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에너지로 전환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더 큰 슬픔을 보며 자신의 큰 슬픔을 위로받았다. 성홍열로 어린 아들을 잃었던 19세기 미국 시인 에머슨은 “사람에 따라 슬픔 밑에 깔리기도 하고 슬픔 위에 일어서기도 한다”고 했다. 슬픔 위에 일어섰던 ‘이소선 어머니’, 이젠 슬픔 없는 곳에서 편히 잠드시길.



기선민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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