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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다윈의 정원’] 다윈에게 양보한 월리스

중앙일보 2011.09.10 01:30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1858년 6월 18일, 다윈은 여느 때처럼 서재에서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간다. 급기야 창백한 얼굴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한동안 소식이 없다. 이상하게 여긴 그의 아내가 문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인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노크를 하며 물었다. “여보 왜 그래요? 무슨 편지기에 그러시는 거예요?”



 그 편지의 발신인란에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영국의 시골에서 태어난 월리스는 14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여기저기에서 측량기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10년 정도 측량기사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동식물 표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영국을 떠나 동남아, 아마존, 인도네시아 등지를 탐험하기도 했다.



 1858년 초 그는 열사병으로 누워 있으면서 말레이군도 원주민의 인구가 왜 급격히 증가하지 않는지를 곰곰 생각했다. 그러다 15년 전 흥미롭게 읽었던 맬서스의 『인구론』이 갑자기 떠올랐고, ‘생존투쟁’이야말로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관해 짧은 논문을 작성한 월리스는 그것을 편지에 동봉해 다윈에게 보낸다. 출판을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를 당대 최고의 학자에게 검토받고 싶은 정도였다.



 아내의 노크 소리에 방문이 열린다. 다그치는 아내에게 다윈이 한숨을 길게 내쉰다. “난 이제 끝이야!” 월리스의 편지 속에 다윈 자신이 20년씩이나 발표를 미루며 공들여온 자연선택 이론이 너무도 명확하게 요약돼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동안의 연구를 모두 불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행여 월리스의 생각을 훔쳤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다윈을 살린 것은 그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다윈이 자연선택에 관해 1844년에 쓴 글과 1857년에 쓴 편지의 일부, 그리고 월리스의 논문을 함께 묶어서 생물분류학회에서 공동으로 발표하도록 하자는 제안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자연선택 개념의 근원지가 다윈이라는 사실은 지인들 사이에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기에 그런 조치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월리스는 당시 런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1858년 7월 1일, 이 혁명적 사상의 발표는 너무도 조용히 끝나버렸다. 다윈은 아이가 죽는 바람에 발표장에 올 수 없었고, 월리스는 공동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조차 발표 날 사흘 뒤에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요즘 같으면 지적재산권을 놓고 법정 시비가 붙었을 만한 상황이었다. 내가 만일 월리스였다면 틀림없이 변호사를 선임했을 것이다. 런던에서 돌아가는 일련의 일들이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월리스는 변호사를 선임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윈 선생 같은 대가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억누르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깊은 존경심 때문이었다. 월리스는 다윈을 평생의 멘토로 여겼다. 그가 1889년에 『다윈주의』라는 책을 썼던 것만 봐도 얼마나 다윈을 대단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누구를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그의 이름 뒤에 ‘주의’를 붙인 책을 쓴다는 것은 웬만한 존경심으로는 어렵다. 그래서 후대 역사가들은 월리스에게 ‘다윈의 달(moon)’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인류 지성사의 커다란 변곡점이 된 다윈의 『종의 기원』(1859) 뒤에는 바로 월리스의 이런 아름다운 ‘양보’가 있었다. 물론 과학의 세계에서 이런 식의 양보는 예외 중의 예외다(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과학자들은 독창성에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이다. 누가 더 중요한 성과를 냈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가 더 먼저 했는가가 첨예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1등이 아니면 기억해 주지 않는 것이 과학의 역사다. ‘월리스’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양보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잊혀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오늘 우리만이라도 월리스를 기억하자!).



 지난 며칠 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두는 단연코 ‘양보’였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지만 어떤 양보가 아름다운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공통의 감각들을 갖고 있다. 서울시를 둘러싼 최근 두 건의 양보 사건은 그래서 대조적으로 느껴진다. 월리스가 아름다운 양보로 ‘다윈의 달’을 자처했던 것은 태양을 진심으로 존경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신뢰가 평생 지속되었던 것은 그 태양이 달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양보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법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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