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Focus] ‘아메리카스컵’ 첫 출전, ‘팀 코리아’ 이끄는 김동영

중앙일보 2011.09.10 01:30 주말섹션 13면 지면보기
지난달 포르투갈 카스카이스에서 ‘아메리카스컵 월드시리즈’가 시작됐다. 카스카이스를 시작으로 9월 영국 플리머스, 11월 미국 샌디에이고 순으로 2013년 여름까지 10여 개 도시에서 잇따라 열린다. 2013년 가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아메리카스컵’의 사전 대회(pregame) 격이다.


“요즘 ‘화성시’ 하면 요트 대회 떠올린대요”

아메리카스컵은 국제 스포츠 행사 중 경제 효과가 올림픽·월드컵에 이어 세 번째 규모로 알려져 있다. 1851년에 시작했으니 근대올림픽(1896년), 월드컵 축구대회(1930년)보다 훨씬 역사가 깊다. 그럼에도 아메리카스컵에 출전해 본 나라는 미국·호주·뉴질랜드·영국·이탈리아·프랑스·독일·스웨덴· 일본·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정도다. 그런데 이 대회에 올해 처음으로 한국팀이 출전했다. ‘팀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김동영(40) 세일즈코리아 대표를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에서 만났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팀 코리아’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시죠.



 “제가 직접 배를 타는 것은 아니고요. 팀을 만들었고 총괄 운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팀코리아의 CEO(최고경영자)라 할까요.”



●얼마나 대단한 대회이기에 출전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죠.



 “조선술·유체역학 같은 과학기술, 그리고 조직력·스포츠마케팅 역량 등을 총동원하는 대회예요. 2013년 본 대회에 나갈 배를 제작하는 데에만 40억원이 들어요. 길이가 30m나 되고요. 사전 대회인 월드시리즈에 나가 있는 배도 12억원짜리예요. 1, 2인용 요트가 아니다 보니 이런 큰 요트를 탈 수 있는 선수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고, 배를 만들 수 있는 건조 기술, 대회 참가를 꾸려갈 수 있는 자금력도 있어야 해요.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은 것이죠. 이탈리아팀도 이번 월드시리즈에 참가 신청을 해서 포르투갈까지 왔는데, 시합을 못하고 배를 해체해서 돌아갔어요.”



●참가는 누가 하는 것인가요.



 “국가가 아니라 요트클럽끼리 겨루는 대회예요. 다만 배는 출전 국가에서 만든 것이라야 해요.”



●‘팀 코리아’의 요트를 타는 선수들은 한국인들이겠죠.



 “모두 다섯 명이 배를 타는데, 한국인 선수는 없어요. 아메리카스컵에선 선수들의 국적을 따지지 않아요. 아메리카스컵에서 4회 우승한 러셀 쿠츠(48)도 뉴질랜드인인데, 뉴질랜드팀에서 스위스팀, 그리고 이어서 미국팀으로 옮겼죠. 장기적으로는 한국 선수들을 양성해야 하겠죠.”



●화성에서 매년 열리는 코리아매치컵을 김 대표가 유치해서 운영하고 있죠.





















“2007년에 시작해 지난 6월에 다섯 번째 대회를 치렀네요. 외국 선수들이 한국에서 만든 요트로 경기를 치르죠. 전 세계 요트 관계자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것이죠. 국내에서도 요트 덕분에 화성시 이미지가 달라졌어요. 전까지는 ‘화성’ 하면 연쇄살인을 떠올렸잖아요. 요즘은 ‘요트 대회’를 연상하는 분이 많아요. 그런 걸 볼 때 보람을 느끼죠.”



 김 대표는 1m91cm의 거구다. 부산 동아대 체육학과를 나왔다. 대학 요트동아리에서 요트에 입문했다. 대학시절에는 전국대회에서 1등도 해봤다. 졸업 후 뉴질랜드의 ‘요트 전문 학교’로 유학을 갔다. 이곳에서 요트 제작과 요트 디자인을 배웠다. 현지 요트 회사에 취업해 4년 동안 요트를 만들었다 한다.



 “제가 만든 것은 ‘수퍼 요트’예요. 길이가 25m 이상이고 가격으로도 50억원 이상 되는 것들이었죠. 비싼 것은 척당 200억원이 넘는 것도 있어요. 아메리카스컵을 하면 이런 수퍼 요트들이 100척 정도 들어와요. 유명한 대기업 회장들이 주인이죠. 배를 먼저 보내놓고 나중에 자기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와요. 그리고 그 나라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요트에 초청해 파티를 합니다. 최고급 마케팅이죠.”



●아메리카스컵 출전은 언제부터 준비했나요.



 “2000년에 뉴질랜드에서 아메리카스컵 대회를 보면서요. 그때 아메리카스컵 출전이 제 인생의 꿈이 됐어요. 뉴질랜드 사례를 보면 아메리카스컵을 계기로 요트산업을 활성화시켰어요. 뉴질랜드도 원래 요트산업 강국이 아니었어요. 1988년 아메리카스컵에 처음 나갔죠. 그리고 95년에 우승했거든요. 우승을 하고 나니까 국가산업 자체가 바뀌었어요. 뉴질랜드 공산품 중 수출 1위가 요트예요. 중국이 2007년에 아메리카스컵에 출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한국은 대회에 출전할 준비가 된 것인가요.



 “솔직히 그렇진 않아요. 저도 한 10년 뒤에나 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유일무이한 기회가 왔어요. 미국팀이 줄곧 우승을 차지해 왔는데 스위스팀이 2007년에 우승하면서 두 팀 간의 갈등이 소송으로 번졌어요. 이 과정에 아메리카스컵 경기 운영방식이 확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몸체가 하나인 요트로 경기를 했어요. 2013년 대회부터는 몸체가 두 개인 카타마란(쌍동선)을 쓰게 됐어요. 그래서 각국 팀들에 적응기간을 주기 위해 올해 처음 ‘월드시리즈’라는 것을 도입한 거예요. 2013년 가을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배를 만들 시간을 벌고, 연습할 기회를 주자는 거죠. 월드시리즈에 나가는 배는 본 대회에 나갈 배의 절반 크기예요.”



●경기 방식이 안 바뀌었으면 이번에 도전장을 못 내겠군요.



“그렇죠. 참가 조건이 카타마란으로 안 바뀌었으면 시작을 안 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기존 팀들과 기술력의 차이가 엄청 크니까요. 그런데 한국팀이 이번에 아메리카스컵은 처음 참가했지만 다른 팀들도 카타마란으로 시합을 처음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솔직히 리스크가 많아요. 하지만 리스크라는 것도 도전을 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래저래 비용이 많이 들겠군요.



“그래서 후원자 확보가 절실해요. 미국팀은 오라클, 뉴질랜드팀은 에미레이트가 후원하고 있어요. 저희는 ‘세일 레이싱’이라는 스웨덴 요트복 전문 회사만 후원사로 확보된 상태예요. 저희가 스카우트한 선수들 말고 저나 디자이너, 홍보이사, 기술이사 같은 운영진은 사실상 봉급을 안 받고 팀을 꾸려가고 있어요. 저희 지인들의 경제적 도움도 받고 있고요.”



●참가 신청은 어려움 없이 받아들여졌나요.



 “제가 2000년 이후로 아메리카스컵 관련 행사는 다 가봤어요. 그래서 해외 관계자들 사이에서 제 별명이 ‘미스터 에브리웨어(Mr. Everywhere)’예요. 하하. 어딜 가도 제가 보인다고요. 그래서 아메리카스컵 관계자들을 다 사귀었고, 그들이 제게 많은 조언을 해줬어요. 이번이 도전의 적기라는 것도 그들이 알려줬고요.”



●김 대표에게 요트가 그만큼 중요한가 봅니다.



“우리는 그냥 귀족들이 즐기는 스포츠 정도로들 생각하죠. 그런데 산업적 측면이 엄청나게 커요. 산업 규모가 조선 시장과 거의 비슷해요. 조선업을 한국과 일본에 빼앗긴 영국이 요트산업으로 버티고 있죠. 팀 코리아가 아메리카스컵을 나간 것을 계기로 한국 요트산업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 달라질 거예요. 두고 보세요.”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가족이죠. 제가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는 것도 가족들이 이해해 주는 덕분이에요. 아메리카스컵 도전은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사실 ‘코리아 매치컵’도 제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었어요. 그런데 노력하면서 하나씩 이루어냈죠. 그러면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아내가 가끔 “평범하게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요. 11살, 8살짜리 아들 놈들은 저를 ‘요트 왕’으로 알아요. 하지만 20년 뒤에는 뉴질랜드에서 낚시하면서 느긋하게 살 겁니다.”



j 칵테일 >> 부잣집 도련님?



얼핏 보기에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다. 뉴질랜드 ‘요트 전문학교’로 유학을 갔으니. 알고 보니 그게 아니다. “제가 오죽하면 생활비가 부족해 유학 중에 결혼을 했다니까요.” 1999년 연초에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난 김 대표는 같은 해 6월 잠깐 한국에 들어와 결혼식을 치렀다. “결혼반지도 안 하고, 예식도 구청에서 했어요. 결혼사진은 제 친구가 찍어줬고요.” 김 대표 부부는 양가에서 750만원씩을 받아 1500만원을 들고 뉴질랜드에 신방을 차렸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결혼식을 올린 게 아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건 아닌데, 어쨌든 마누라가 알면 씁쓸해 하겠죠. 하하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