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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보테가 베네타 여성복 디자인 팀장 김준형

중앙일보 2011.09.10 01:30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모든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꿈의 도시다. 전 세계 패션을 장악한 명품 브랜드가 몰려 있고 매년 봄·가을에는 한 해의 유행을 좌우하는 거대한 패션쇼가 열린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처럼 화려한 만큼 좁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밀라노는 전 세계 패션인들의 꿈과 생존의 전쟁터다. 이 격전지에서 우뚝 선 한국인이 있다. 35세의 김준형씨다. 돌체 앤 가바나의 크리에이티브 팀장을 거쳐 현재 보테가 베네타에서 여성복 디자인 팀장을 맡고 있다. 전자는 섹시함의 대명사로, 후자는 우아한 여성의 교과서로 불리는 브랜드들이다. 한국인으로 유럽의 명품 패션 브랜드를 지휘한다는 것도 대단한데 전혀 다른 성격의 브랜드로 옮겨 다닌 이력도 흥미롭다. 여름휴가차 한국에 들른 그를 만나 열정과 긴장감 없이는 버틸 수 없는 명품 브랜드 패션 디자이너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보는 옷? 입고 싶은 옷! ”

글=서정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1966년 이탈리아 비첸자에서 설립된 보테가 베네타는 최상급 가죽 소재와 뛰어난 장인의 수작업으로 명성을 쌓은 명품 패션 브랜드다. 다른 명품 브랜드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인트레치아토 우븐(가죽을 짜임새 있게 엮는 보테가 베네타만의 특수 기법)을 이용한 가방과 절제되고 우아한 패션 디자인으로 전 세계 여성을 사로잡고 있다. 그렇게 클래식한 매력으로 충만했던 보테가 베네타가 올해 가을·겨울옷부터 돌연 젊어지고 섹시해졌다. 김준형씨를 영입하면서부터다.



●보테가 베네타에서의 현재 역할은 무엇인가.



 “여성복 디자인 부문 팀장이다. 명품 패션 브랜드들에는 전체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하 CD)가 한 명씩 있다. 보테가 베네타는 현재 토마스 마이어가 CD를 맡고 있고 그 밑에 여성복·남성복·가방·장신구·구두 파트 디자인 팀장이 각각 한 명씩 있다.”



●이전의 경력은.



 “한국에서 명지대 의상디자인학과 3학년을 마치고 2002년 밀라노에 있는 패션학교 마랑고니에 2학년으로 편입했다. 4학년 때 학교를 수석졸업하고 안토니오 베라르디라는 여성복 브랜드에서 인턴십을 마쳤다. 졸업과 동시에 돌체 앤 가바나에 입사해 5년을 일했다. 보테가 베네타로 옮겨 온 지는 1년 정도 된다.”



●10년 전만 해도 ‘패션=파리’였다. 왜 유학지로 이탈리아를 선택했나.



 “물론 파리행도 고민했다. 하지만 예술성과 상업성이 잘 조화된 이탈리아가 나에게 맞는다고 판단했다. 마랑고니 패션학교는 업계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어 실무 위주의 수업이 진행된다. 졸업 후에도 인턴십 등을 통해 업계로 바로 진출하는 데 유리하다. 돌체 앤 가바나의 대표 중 한 명인 도미니코 돌체도 마랑고니 출신이다.”



●돌체 앤 가바나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고 들었다.



 “여성복 디자인 팀의 막내 디자이너로 입사했고 2년 후부터는 크리에이티브 팀의 팀장으로 일했다. 브랜드의 대표인 도미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의 오른팔 역할이다. 돌체 앤 가바나는 여성에 대한 낭만을 꽃과 리본으로 표현하길 좋아한다. 또 코르셋을 이용한 디자인을 즐겼다. 지난 5년간 돌체 앤 가바나에서 선보인 모든 옷들의 꽃과 리본, 코르셋 디자인은 모두 내 손을 거친 것들이다.”



●입사 2년 만에 크리에이티브 팀장이라면 파격적인 대우다.



 “서양문화권에서 동양인이 일한다는 걸 장점으로 본 것 같다. 도미니코 돌체는 ‘동서양의 문화를 잘 섞어서 독특한 시각으로 걸러내는 데 탁월하다’고 평가하곤 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당신을 스카우트하면서 무엇을 원했나.



 “면접 때 CD인 토마스 마이어가 당부한 말이 있다. ‘보테가 베네타의 클래식하고 우아한 이미지와 돌체 앤 가바나의 섹시함이 만나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그 결과물이 올해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보여준 옷인가. 기존의 보테가 베네타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큰 변화가 느껴졌다.



 “보테가 베네타만의 옷이라는 게 있다. ‘포테이토 백’이라고 부르는 디자인인데 감자 푸대처럼 헐렁한 옷을 벨트로 꼭 조여서 입는 스타일이다. 올 가을·겨울옷에서는 벨트를 빼고 몸에 붙는 듯하면서 밑단이 살짝 퍼지는 A라인의 옷들을 주로 선보였다. 기존에 브랜드가 갖고 있던 클래식하고 우아한 디자인에서 젊고 경쾌하고 섹시한 이미지로 변화하기 위해 찾아낸 결과다. 그리고 패브릭(원단)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다양한 모양의 꼬임과 색을 가진 3차원적 패브릭 디자인은 기존의 보테가 베네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하면서 왜 유독 패브릭에 집중한 건가.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다. 옷의 겉모양은 누구라도 따라 할 수 있다. 짝퉁 시장이 그렇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패스트 패션 시장이 그렇다. 하지만 새로운 패브릭을 창조하는 일은 시간과 돈, 노력을 많이 투자해야만 얻을 수 있는 가치다.”



●왜 여성복 디자인을 택했나.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할 때처럼 풍부한 감성과 창의성을 표현하는 데 여성복이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또 남성복보다 시장이 크다. 소비자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도 크기 때문에 스릴이 있다.”



●남자 디자이너들이 여성복을 만들면 어떤 장점이 있나.



 “여자 디자이너는 주로 ‘내가 좋아하는 옷’ 또는 ‘나는 입지 못하는 옷’ 두 가지 중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 옷을 입을 여자를 주로 생각한다. 그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토마스 마이어는 늘 내게 ‘아름다운 옷을 만들기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들을 위한 창조적 영감은 어디서 얻나.



 “순간에서 영감을 얻기보다는 영화·음악·책·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자료를 뒤져가며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찾아내는’ 타입이다. 그래서 내게 창의성의 다른 말은 끊임없는 공부다.”



●너무 무난한 경력이다. 실패의 경험은 없나.



 “명지대에서 3학년을 마쳤을 때 성적이 꽤 좋은 편이었다. ‘유럽, 뭐 별것 있어?’라는 우쭐한 마음이었고 마랑고니 입학 후에도 2학년은 무난했다. 그런데 3학년이 돼서 가장 중요한 첫 시험을 치르면서 완전히 박살 났다. 평가자인 교수가 나의 스케치를 보더니 ‘이런 올드한 디자인은 뭐야’ 하더니 종이를 접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더라. 자존심이 상해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머리를 밀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잠을 3분의 1로 줄이고 악착같이 공부했다. 4학년 때 그 교수를 다시 만났는데 상황은 반전됐다. 마랑고니가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학교 광고를 만드는 데 모델에게 입힐 옷을 나에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광고 책임자가 나를 무시했던 그 교수였다.”



●머리는 그때부터 줄곧 삭발인가.



 “맞다. 난 아직도 내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머리를 깎을 때마다 늘 새로운 다짐을 한다. 긴장하자, 공부하자. 이탈리아에 살면서 와인을 안 마신다는 걸 상상할 수 있나? 나는 3학년 때 머리를 밀고부터 와인도 꼭 필요한 자리에서 몇 모금 외에는 안 마신다. 시간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정신이 흐려지는 게 싫다. 디자이너들 중에는 채식주의자들도 여럿 있다. 몸이 무거워지면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다. 디자이너들의 세계는 우아해 보이지만 실은 생존을 위한 전쟁터와 같다. 돌체 앤 가바나 시절 5년 동안 디자이너가 30명 넘게 바뀌었다. 우리끼린 디자인 사무실을 ‘복도’라고 불렀다. 절대 안주하지 못하고 한 바퀴 돌고 나가야만 하는 무서운 곳이라는 의미다.”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는 늘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전혀 아니다. 야근과 주말 업무는 기본이고 가정도 불안정할 때가 많다. 신혼 때 아내와 나는 1년간 주말부부로 지내야 했다. 페라가모에서 구두 디자이너로 일하던 아내는 피렌체에, 나는 밀라노에 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정의 안정을 위해 아내가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여전히 난 15개월 된 아이에게 나쁜 아빠다. 한 달에 한두 번은 1주일씩 해외 출장을 가야 하고 수시로 지방 출장도 가야 한다. 입사 계약서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출장이 많으니 이해하고 동의하라’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향후 계획은.



 “도미니코 돌체는 늘 ‘옷은 약과 같다’는 말을 했다. 아팠을 때 먹는 약처럼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옷이 진짜 옷이라는 말이다. 소비자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을 만들고 싶다. 더 미래에는 한국에 돌아와 내가 만든 옷을 아시아 사람들에게 입힘으로써 한국 패션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싶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 친구들에게 한 마디.



 “본인이 하고 싶은 스타일과 감성도 중요하지만 일단 시장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빠른 변화에 발맞춰 공부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 시장이 원하는 디자이너, 고객과 소통하는 디자이너만이 살아남는다.”



●당신에게 패션이란.



 “옷은 두 가지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감동을 주거나 아니면 입고 싶게 하거나. 나는 후자에 더 관심이 많다. ‘아름답다’고 감탄만 하고 끝나는 옷보다는 사서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게 진짜 패션이라고 생각한다.”



j 칵테일 >> “준, 레이스로 부서진 듯한 꽃을 만들어봐”



내가 돌체 앤 가바나에 입사했던 2005년은 브랜드가 창립 20주년을 맞는 해였다. 봄·여름 컬렉션을 앞두고 모든 사람이 기념 패션쇼 준비로 분주했다. 나 역시 갓 입사해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낼 때였다. 마침내 쇼 당일. 돌체와 가바나 중 한 명인 도미니코 돌체는 원단에 워낙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쇼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인데도 새로운 원단을 앞에 두고 고심했다. 사각거리는 레이스 뭉치를 한 움큼 쥔 그가 갑자기 날 불렀다. “준, 부서진다는 말 알지? 이 드레스에 부서질 듯한 꽃 모양 주름을 만들어봐.” 시침핀과 레이스를 손에 쥔 나는 얼떨결에 보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핀을 한 번 옮기면 수석 재단사와 재봉사 세 명이 바로 그 자리에서 레이스를 옷에 꿰매는 작업을 했다. ‘이게 아닌가?’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 가느다란 시침핀이 쇠붙이보다 무거웠지만 난 프로처럼 일을 해내야 했다. 다행히 그 옷은 쇼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때 일을 되돌아볼 때마다 난 생각한다. ‘준비된 감각’ ‘망설임 없는 자신감’만이 스스로를 빛낼 수 있는 요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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