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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2. 서쪽에서 온 마을 (3)

중앙일보 2011.09.10 01:30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도인은 남에게 제 몸을 맡기지 않소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인보 놈과 콩팔칠팔하고 있는데 의원이 왔다. 목소리가 메마르고 가느다랗다. 짐작건대 늙고 삐쩍 마른 몸이리라. 진맥하는 손가락은 굵직하다. 일을 많이 한 손이다. 농사지어가면서 급체한 사람들 사관이나 따주는 돌팔이 의원이 틀림없다. 나는 심드렁하게 몸을 내맡겼다.



 “젊은 스님 포가 여간 심한 게 아닐세. 바디고개가 바람이 세긴 하지. 그렇다고 사람과 말이 함께 떠오를 수야 있겠소?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졌겠지.”



 의원 영감은 사고 당하던 때의 정황을 일러주는 인보의 말이 허황되다고 여겼다.



 “말이 떨어져 즉사했다니까요. 이따 가보면 알 게 아닙니까.”



 인보가 씩씩거렸다. 세상에는 믿기지 않은 일이 얼마든지 있다. 사람들은 직접 보지 않으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사실이오. 공중에 솟구쳐 올랐다가 곤두박질쳤을 때는 이미 눈이 안 보였소.”



 나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어쨌거나 많이 놀랐나 보오.”



 의원 영감은 내 손과 발, 머리에 침질을 해댔다. 혈 자리나 제대로 알고 찔러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의원 영감이 코밑 인중을 찔렀을 때, 너무 아파서 그만 비명을 질렀다.



 “엄살이 꽤 심하오.”



 그가 침을 거뒀다. 눈을 떠 봤다. 여전히 안 보였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패독산(敗毒散)을 지어 보낼 거요. 이레 동안 달여 먹고 나면 효험을 보리.”



 “이레씩이나?”



 나는 돌팔이 영감의 진단을 인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내가 이레 동안이나 소경 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도 너무 길다. 나는 감찰 나온 사람이다. 나는 진리의 말씀을 담은 대장경 경판의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여기에 왔다. 눈이 먼 채로 어떻게 오류를 바로잡겠는가. 한순간이라도 진리가 왜곡되는 걸 놔두는 건 직무유기다.



 “초장에 잘 조섭하지 않으면 영영 눈이 멀 수도 있소.”



 “되지도 않는 겁박 마오. 나는 그런 업장을 지은 바 없으니까.”



 어따 대고 망발인가. 나는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나는 해 아래서 한 점 부끄럼 없는 청정비구이고 이 늙은이는 돌팔이다. 나약해진 환자를 겁박하여 돈이나 뜯어낼 속셈이 분명하다.



 “자부심이 지나쳐 아만으로 가득 차 있구먼.”



 점입가경이었다. 의원이면 병만 고쳐놓으면 그만이다. 환자의 심성을 함부로 평가할 자격이 없다. 나는 강도에서 파송된 승정이다. 감히 어따 대고 지청구인가.



 “무엄하다. 말을 삼가라!”



 나는 핏대를 세웠다.



 “끄음! 그래서 승정께서는 도인(道人)이 못 되오. 도인은 남에게 제 몸을 맡기지 않소. 설령 몸을 맡기게 되더라도 온전히 맡기고 순순히 따르오.”



 나는 머쓱해졌다. 시골고라리 영감의 말에 씨가 들어 있다.



 “인보야, 약값을 후하게 쳐 주거라.”



 “됐소. 나는 돈 받고 병 고쳐주는 장사꾼 의원이 아니오.”



 한 방 정통으로 맞은 셈이었다. 의외였다. 앵돌아진 돌팔이 늙은이의 모습이 안 봐도 선했다. 옷자락 펴지는 소리를 남기고 그가 사라졌다. 내가 어쩌다 이런 궁벽한 변방까지 와서 촌 늙은이에게 능욕을 당하는가. 눈이 멀어버린 게 화근이었다. 어서 눈부터 떠야 한다. 김승이 나타나기 전에 눈을 떠야 한다.



 쇳소리 목청을 지닌 사내가 다시 나타났다. 점심상을 든 일꾼과 함께였다. 인보와 나누는 대화 내용으로 보아 숯이 담긴 화로와 약탕기도 가져온 듯하다. 입맛이 없어서 몇 수저 뜨고 물렸다. 그들이 상을 내가자 인보가 귀띔한다. 쇳소리 목청의 사내가 공방 살림을 도맡아 하는 것 같다고. 패독산 첩약 뭉치가 배달되었다. 약이 달여지기를 기다리며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이 세상에 와서 내가 맨 처음 본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기억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장면은 세 살 때 겪은 일이다. 나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있었다. 불꽃이 일렁거렸다. 활활 타는 불꽃은 빨간 보자기 같았다. 작은 기와집을 폭 싸버린 불의 보자기 속으로 물동이들이 들이부어졌다.



 조상의 신주단지를 모셔둔 사당에 난 불이었다. 소년 시절의 어느 날, 나는 그 장면을 기억해냈고 어머니를 통해 그것이 내가 세 살 때 우리 집 사당에 난 불이었음을 알았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3개월 뒤 졸곡(卒哭)을 올리던 날에 되살아난 기억이었다. 낙향한 아버지는 화병을 앓다가 너무 일찍 생을 마감했다. 사당에서 되살아난 내 유아 시절의 기억은 정확했다. 당시 어머니는 나를 업고 물동이를 이어 나르며 불을 끄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기둥이었다. 아버지 없는 종갓집을 어머니가 지켰다. 백부 내외는 벼슬살이를 하느라 향리를 떠나 개경에서 지냈다. 출가한 이후 나는 한 번도 어머니를 찾아뵙지 않았다. 부처님 제자 노릇 제대로 하려면 속가와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며칠 전, 산청 단속사를 나와 완산주로 향하면서 잠시 고향집을 생각했었다. 산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금오산 자락에 어머니가 계셨다. 일연 같은 선승은 노모를 모시고 다니며 지극정성으로 시봉하고 있었다. 비웃었지만 내심 그럴 수 있는 그의 처지와 용기가 부러웠다.



 깨달음은 개인의 몫이다. 같은 부처님 말씀이라고 해도 저마다 처한 위치와 입장, 내공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계율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면 사람 냄새가 없어진다. 유가에서 불가, 특히 선가(禪家)를 비판할 때 어질지 못함을 든다. 잘라낼 줄만 알고 태어난 자리조차 보듬어 안을 줄 모르면 중생구제를 어떻게 하겠냐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리움이다. 내 눈가로 흐르는 뜨거운 것이 있다. 나는 손으로 눈가를 찍어낸다. 촉촉하다. 눈물이다. 나는 소리 없이 운다. 한참 동안 펑펑 눈물을 뿌린다. 나는 혼자다. 이렇게 눈이 멀어 누운 지금, 내 심정을 아는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덥구나. 인보야, 부채 좀 다오.”



 나는 열쳐놓은 문밖에다 대고 별 필요치도 않은 부채를 달라고 외친다. 아무런 대꾸가 없다. 차라리 잘 됐다.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맘 놓고 더 울어도 되게 생겼다. 인보 녀석은 마루 밑 화로에 약탕기를 올려놓고 바람을 쐬러 간 모양이다. 참 속 편해서 좋다. 인보처럼 살면 근심걱정할 게 없다.



 풍악소리가 울린다. 꽹과리와 태평소 가락이 요란하다. 북과 징소리도 난다. 사이사이 웃음소리가 자글자글 터진다. 광대놀이라도 벌어진 걸까. 풍악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이웃 동네로 가는 것 같다. 발자국소리가 울린다. 인보가 돌아오는 모양이다. 신발을 벗고 마루로 사뿐 올라온다.



 “인보야, 무슨 일이냐?”



 “….”



 “웬 풍악소리냐고?”



 그래도 대꾸가 없다. 나는 숨을 죽인다. 약탕기에서 약물 끓는 소리가 울려 나온다. 나는 정신을 집중한다. 미세한 사람 숨결이 감지된다. 그 숨결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보이지 않지만 나는 팽팽한 시선을 의식하며 묻는다.



 “뉘시오?”



 신경이 곤두서고 맥박이 빨라진다. 본능적으로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운 채로 두 손을 뻗어 허공에 반원을 그린다.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다. 사람 숨결은 내 바랑 쪽으로 옮아간 것 같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앉아서 그쪽을 더듬는다. 아무것도 붙잡히는 게 없다. 이러는 나를 저쪽은 고스란히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만 실소가 터진다. 저쪽은 보이고 나는 안 보인다. 저쪽은 나를 고스란히 보고 있고 나는 저쪽을 전혀 못 본다. 그렇다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나는 얌전히 제자리에 눕는다.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나니 마루 밟는 소리, 신발 꿰는 소리가 차례로 들린다. 발자국소리가 난다. 이번에는 멀어져가는 소리다. 누굴까. 왜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코로 숨을 들이켠다. 진한 송진 냄새 같은 게 맡아진다. 오래 된 책장을 넘길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한약 냄새 같기도 하지만 약탕기에서 나는 냄새와는 사뭇 다른 냄새다. 의문의 방문자가 남기고 간 것 같다. 그전에는 이런 냄새가 없었으니까. 방 안 가득한 그 향기가 급하게 뛰던 내 맥박을 진정시킨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누가 왔다 간 걸까. 혹시 김승이 왔다 간 건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든다.



 나는 눈을 감는다. 떠도 보이지 않는 눈이지만 꼭 감고서 제3의 눈을 떠볼 참이었다. 수행자 가운데 고수는 천안통(天眼通)을 깨친다. 눈을 감고도 모든 형과 색을 꿰뚫어 본다. 그뿐 아니라 미래까지 본다.



 우리는 해보지도 않고서 미리부터 못한다고 한다. 스스로 한계를 지우는 것이다. 아미타불은 양쪽 눈썹 사이에서 나팔 모양의 빛을 뿜어낸다. 그 빛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비춰본다. 나는 수행자다. 얼치기도 아니고 제대로 된 수행자다. 내공이 있다면 이런 때 발휘해야 한다. 과거와 미래 모습을 보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현재만이라도 뚫어보자. 나는 방에 누워 있는 나를 본다. 처량하다. 문밖 뜰에는 약탕기가 끓고 있다.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마당은 텅 비어있다. 감나무 그늘 틈새로 여름날 오후의 햇살만 꼼지락거린다. 나무 둥치에 매미의 허물이 보인다. 등에 구멍이 뚫렸다. 허물을 벗어두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린 것이다. 내 의식도 내 몸을 빠져나와 이렇게 허공을 날고 있다. 마을 구경을 나선다. 조용한 마을에 풍악을 울리며 행진하는 무리가 보인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하얗게 따라붙었다. 인보 녀석의 모습도 보인다. 수행한다는 놈이 그깟 광대무리에 마음을 빼앗겨 넋을 놓고 보고 있다.



 “약 마셔요.”



 인보가 돌아와 내 몸을 일으켜 앉힌다.



 “광대무리에 섞여서 춤이라도 추지 그랬냐.”



 “어라! 방에 누워서도 볼 건 다 보시네.”



 “눈이 멀자 천안통이 열렸다.”



 “그럼 약 마시지 말아야겠네요. 천안통 닫혀버릴라.”



 인보가 입에 약사발을 대주다가 뗀다. 나는 두 손으로 붙잡고 벌컥벌컥 마신다.



 “아직은 초보다. 뜰에 감나무 보이지?”



 “그런데요.”



 정말 감나무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놀라면서도 기뻤다.



 “네 키 높이 둥치에 매미 허물이 하나 붙어 있다. 떼어 오거라.”



 나는 제8식인 말라식을 확장하여 본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었다. 인보가 마당으로 나갔다. 조금 있다 그가 외쳤다.



 “지밀 승정, 눈이 보이시는군요! 잘 됐어요.”



 그는 매미 허물을 가지고 와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나는 눈을 감고서 매미 허물을 본다. 투명한 허물이 보인다. 이 허물은 전에 본 기억을 옮겨온 형상일까. 방금 인보가 가져온 걸 꿰뚫어보고 있는 걸까.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우리 눈이 어떤 대상을 볼 때, 찰나의 형상을 본다. 먼저 본 건 전 찰나, 나중에 본 건 후 찰나다. 전 찰나를 기억하는 우리는 후 찰나와 접속하여 그것이 연속선상에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전 찰나에 본 것은 후 찰나에 본 것이 아니다. 대상은 이미 그 시간만큼 변하고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같지 않은 걸 같다고 여기는 우리의 시각과 그 기억은 그래서 믿을 게 못 된다.



 “보이시면 눈을 뜨고 보시지 왜 눈을 감고 봐요?”



 “조용히 해봐라.”



 “난 그럼 나가볼게요. 마을에 고기를 잡고 잔치가 벌어진대요. 광대패들이 온 김에 밤새 논다나 봐요.”



 뭐가 그리 신나던지 인보는 여기 와서부터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일 줄 몰랐다.



 나는 책상다리를 하고서 선정(禪定)에 들었다. 이 뭐꼬, 화두를 잡도리하고 의식을 명징하게 지워나간다. 그렇게 6식과 7식, 8식의 단계를 뛰어넘으면 대원경지(大圓鏡智)에 다다른다고 한다. 중생의 미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대원경지는 우주를 비춰보는 열반의 지혜다. 살아 있는 자, 누구건 열반의 지혜에 도달한 이가 있을까. 나는 단언한다. 그런 자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다. 그럼 부처는 뭔가. 부처는 신(神)이 아니다. 나는 부처가 우주를 꿰뚫어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주는 우주를 벗어날 수 있어야 온전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우주를 벗어난 존재는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우주에 속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므로.



 나는 부처를 꿈꾼다. 세상에 눈 먼 부처는 없다. 우선 눈부터 뜰 일이다. 육신의 눈을 뜬 다음, 본격적으로 천안통을 훈련하자.



 “저녁상을 일찌감치 봐왔네요. 동네잔치에 고깃국을 끓였는데 건더기는 빼고 국물과 무만 퍼왔지요.”



 쇳소리 목청의 사내가 내 선정을 깨웠다. 나는 밥상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천안통은 아직 불완전하다.



 “매번 고맙구려. 인보는 어디 갔는지 원.”



 나는 고깃국 한 그릇에 잡곡밥을 말아 맛나게 먹었다. 사내는 저녁상을 물릴 때까지 내 곁을 지켰다. 이름이 전추산이라고 했다. 통성명하면서 붙잡아본 손은 솥뚜껑처럼 크고 두툼했다.



 인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녘에 뒷간을 보려고 불렀으나 그때까지도 안 들어와 있었다. 나는 기다시피 마당에 나와 한쪽에 실례를 해야 했다. 인보 놈이 미웠다. 돌아오면 똥부터 치우라고 하고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칠 작정이었다.



소설가 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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