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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가 만난 사람들] 러시아서 활동하는 고려인 3세 작가, 아나톨리 김

중앙일보 2011.09.10 01:30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서리 내린 것처럼 흰 머리와 수염. 당장이라도 금도끼를 건네줄 것 같은 산신령 이미지의 그에게서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하긴 힘들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려인 3세 작가 아나톨리 김(72) 얘기다. 하지만 20세기 초 배고픔을 면하려고 농사 지을 땅을 찾아 러시아로 이주한 할아버지, 스탈린 독재 치하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당한 아버지를 둔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 암울했던 기억은 고스란히 그의 문학에 자양분이 됐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대표 최정화 한국외국어대 교수)’이 개최한 ‘문화소통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6일 만났다.


“내 정체성, 아직 답 찾지 못했다 ”

김정원 jTBC 기자















●당신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면서도 러시아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로 불린다.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는가.



 “누가 어떤 나라의 작가인지를 결정하는 건 작품을 쓴 언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러시아 작가다. 하지만 내 몸속에는 한국의 피가 흐르고 있다. 러시아 문단에서도 내 문학의 위치는 특별하다. 러시아어로 쓰지만 한국 민족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려인 3세 작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러시아 문단에서 환영받기 힘들지 않았나.



 “그렇다. 한국적 ‘한’이 서려 있는 작품으로 러시아 문단에 등단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러시아 작가 중 처음으로 한민족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한국인들의 존재감이 미미했기 때문에 그런 주제를 다루는 작품도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다. 내가 쓴 단편 소설 『수채화』와 『묘코의 찔레꽃』이 197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는 ‘북극광’이란 잡지에 실리면서 등단했다. 당시 내 나이 서른세 살이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정확히 10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절대자 혹은 신이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작가가 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는데 자신을 작가로 만든 신을 원망한 적은 없나.



 “전혀 그렇지 않다.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많은 시련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원망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작가가 되기 전엔 그림을 그렸는데.



 “작가로서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술을 공부하면서 미에 대한 개념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익혔던 미학은 내 작품 속으로 그대로 옮겨져 왔다.”



●자신의 인생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재미있는 질문이다(웃음). 초록과 파란색으로 요약할 수 있다. 스물네 살 무렵 군에 있을 때 휴가를 받아 노을이 지는 초원을 걸어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림 그리던 시절의 정열을 이제는 문학에 모두 쏟아야겠다는 것을 초원을 걸으며 확실히 깨달았다. 마른 들풀과 다람쥐, 질주하는 말처럼 움직이는 회오리바람이 함께 존재하는 초원이 내 영혼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또 힘들 때마다 하늘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파란색이 맘에 든다.”



●요즘 집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한참을 머뭇거리다) 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은데… 장편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완전히 자유롭게 내 맘대로 쓰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출간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롭게 나를 위해 쓰고 싶다.”



●장편소설의 주제는 뭔가.



 “조금 난해할 수 있는데, 사람과 우주, 사람과 신, 그리고 신과 우주의 관계에 대해 쓰고 싶다. 고려인 3세 러시아 작가라는 특수성을 떠나 모든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고독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싶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정체성을 찾는 거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서리… (세상을 뜨고 싶다). 아직 내가 누구인지 답을 찾지 못했다. 나의 마지막 장편 소설은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작가는 감정이 북받친 듯 자신도 모르게 서툰 이북 사투리를 섞어 썼다.)



j 칵테일 >> 남매 이름에서 혁명 일어날 뻔



아나톨리 김의 누나 이름은 ‘류치야’다. 혁명을 뜻하는 러시아어 ‘레볼류치야’의 뒷부분을 딴 이름이다. 아나톨리 김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면 ‘레보’라고 부르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반대해 이름을 아나톨리로 지었다. 만약 아나톨리의 아버지가 그의 이름을 ‘레보’로 지었다면 누나 이름과 합쳐 글자 그대로 ‘혁명’이 일어날 뻔했다. 아나톨리 김은 1939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미술대학을 중퇴했다. 고리키 문학대학 졸업 후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80년대 러시아 문단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특히 84년에 발표한 장편 『다람쥐』는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모스크바 예술상’(1993), 독일의 ‘국제문학상’(1981), 이탈리아 펜네 시 문학상(2001), 톨스토이 재단의 ‘야스나야 폴랴나 문학상’(2005)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 이 기사의 동영상은 www.joinsmsn.com의 ‘미리 보는 jTBC 뉴스’ 코너와 아이패드 중앙일보 앱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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