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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사요나라 도쿄, 간바레 닛폰

중앙일보 2011.09.10 00:21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소영
도쿄 특파원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에서 서북쪽으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거리 산 속에 후타마타(二股) 온천이라는 곳이 있다. 온천수의 침전물이 거대한 석회돔을 이룬 자연 라듐온천으로, 규모로는 미국의 옐로스톤국립공원의 매머드온천에 이어 둘째다. 신경통·관절염·피부병·만성부인병·피로해소·만성소화기 질병 등에 유효하며 “2주간 온천욕을 하시고도 개선되는 느낌이 없으면 숙박료를 전액 환불해 드립니다”라는 광고를 하고 있다. 몇 해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남편과 가족여행차 가보니 역시 치유 목적으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라듐을 방출하는 약한 방사선이 신경통과 위장병 등 각종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예부터 익히 알려진 사실. 전문가들은 라듐 가스는 신체대사를 촉진시켜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자율신경계를 복원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여행을 할 때면 일부러 각 지역에 있는 라듐온천을 찾아가기도 했다. 3·11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일본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일본의 각종 언론 보도를 보면 전국의 라듐온천을 찾는 손님이 급감했다. 몸에 해로운 스테로이드도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면 약이 되듯 방사선은 암치료에도 이용된다. 그런데도 원전사고가 발생한 순간부터 일본에서 방사선은 무조건 ‘해로운’ 존재가 돼 버렸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 일본인들도 불안한 마음은 똑같다. 공기 중 방사능 농도를 확인하게 되고,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의 원산지도 일일이 따진다. 도쿄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내게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제 방사능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잘됐다”며 축하해줬다. 나만 위험한 곳에서 도망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특파원으로 일본에서 지낸 3년6개월 동안 기자는 일본의 첫 정권교체와 3·11 대지진을 경험했다. 세상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민주당의 정권교체는 잇단 실정과 총리 교체로 일본 국민을 실망시켰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2만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지만 피해지역 주민들이 원래 생활을 되찾기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실업자가 증가하고 사상 초유의 엔고는 일본 경제를 옥죄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된 일본 사회가 활기 차고 밝았다고는 결코 할 수 없다. 일본이 전 세계 경제를 집어삼킬 듯했던 1980년대의 힘을 되찾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하지만 전후 불타버린 폐허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일으킨 것은 근면한 일본 국민이었다. 아침 출근길마다 큰 소리로 아침인사를 건네는 동네 아이들, 아침마다 동네 청소를 하는 할아버지, 유일한 외국인 제자인 딸 아이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락장에 편지를 써보내 준 담임선생님.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하는 수많은 일본인이 있기에 일본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지진 피해를 본 일본 동북 지역의 빠른 복구를 기원한다. 간바레(힘내라) 일본!



박소영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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