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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명 수용소 전전 … 원전 오염수 처리 손도 못 대

중앙일보 2011.09.10 00:11 종합 12면 지면보기



3·11 동일본 대지진 6개월 … 끝나지 않은 악몽





“원전 주변 마을 시가지엔 사람 한 명 없더라. 정말 ‘죽음의 거리’더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와 함께 8일 후쿠시마(福島) 원전과 주변 도시를 방문했던 하치로 요시오(鉢呂吉雄) 경제산업상이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 말 때문에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수많은 피난민이 고향인 후쿠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주무 장관이 어떻게 구경꾼처럼 ‘죽음의 거리’ 운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한 지 6개월이 다 돼 가지만 일본은 아직도 어수선하다.



 지진 발생 당시의 미숙한 대응 때문에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은 ‘무능 정권’으로 낙인찍혀 짐을 쌌다. 간 내각이 식물정권 상태로 버틴 최근 몇 개월 동안은 구호만 요란했지 복구작업에 큰 진척은 없었다.



 노다 총리는 후속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16조 엔(약 220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복구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정치권은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9일 현재 사망자는 1만5776명, 행방불명자는 4225명, 고향을 떠나 수용소를 전전하는 이들의 숫자는 8만여 명에 이른다. 지진 발생 직후 “빨리 집으로 돌아가도록 만들겠다”던 일본 정부의 약속은 최근엔 “피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2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가혹한 전망으로 바뀌었다.



 방사선 피해 악몽은 현재 진행형이다.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때의 168배의 양’이라는 방사성 물질은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이미 15개 도현(都縣)으로 확산해 토양과 물·바다는 물론 바닷속 토양까지 모두 오염시키고 있다. 원전 바로 옆 오쿠마마치(大熊町)의 방사성 물질 농도는 소련 체르노빌 원전폭발 사고 당시 강제 이주 기준의 여섯 배나 되는 ㎡당 3000만 베크렐(㏃)이라고 일본 정부가 발표했다.



 최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체르노빌은 한번에 폭발했지만 후쿠시마는 지금도 방사성 물질이 나오고 있어 상황이 더 좋지 않다”며 “앞으로 100만 명 이상이 숨질 것”이란 공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방사성 물질로 인한 먹거리 공포는 일본 열도를 뒤덮고 있다. 후쿠시마나 미야기(宮城) 등 피해지역뿐 아니라 도쿄 주변 수도권의 찻잎과 쇠고기·쌀·야채·물고기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세슘이 검출됐다. 세슘에 오염된 쇠고기가 대량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지금 일본 국민은 “안전이 보장된 것만 유통시킨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



지난달 말 출하 정지가 해제됐던 이와테(岩手)현의 육우 두 마리에서 또다시 잠정 규제치를 초과하는 방사성 세슘이 검출된 게 대표적인 예다. 판도라의 상자인 후쿠시마 원전의 상황에도 불안요소가 잠재해 있다. 제1원전 1~3호기의 원자로 압력용기 온도를 섭씨 100도 미만으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게 지난 4월 도쿄전력이 발표한 목표치였다. 일 언론들에 따르면 현재 1호기 온도는 85.8도, 3호기는 96.1도로 목표치 내로 들어왔고, 112도를 기록 중인 2호기도 이달 중 100도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냉각 시스템에 고장이 잦아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또 8만7700t에 달하는 원자로 내 고농도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원자로 내부에서 연료를 빼내는 최종 작업까지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워낙 호되게 당한 탓에 일본의 원전정책은 ‘탈원전’으로 방향을 잡았다. 노다 총리는 취임 후 “일본 경제가 다시 정상화하는 데 원전은 필요하다”고 미련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하치로 경제산업상은 “새롭게 원전을 건설하는 것도 어렵고, 수명이 다한 원전은 폐쇄할 것”이라며 “향후 일본 원전은 제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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