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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에 희생된 아들 기리며 빈민학교 짓고 장학재단 만들고

중앙일보 2011.09.10 00:06 종합 27면 지면보기



27대 종손 외아들 잃은 강성순씨, 유족회장 김평겸씨



김평겸씨



11일로 9·11 테러가 10주년을 맞는다. 테러 당시 숨진 한인은 21명으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사업을 하며 희망을 찾고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봤다.



 “하얀 러닝셔츠 바람으로 애타게 손을 흔들던 TV 속 그 남자가 준구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아직도 떨쳐버릴 수 없어요.”



 10년 전 9·11 테러 때 준구(당시 34세)씨를 잃은 재미교포 강성순(73)·강필순(70) 부부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준구씨는 27대 종손이자 4남매 중 외아들이었다.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WTC) 북쪽 건물 104층 캔터 피츠제럴드 증권사 애널리스트였던 준구씨는 그날 아침 심한 고열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렇지만 책임감 때문에 출근했다. 어머니 강씨는 “아들을 붙잡지 않은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20여 명이 구조조정을 당했을 때 아들이 포함되지 않은 걸 기뻐했던 일도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









미국 뉴저지주 서니사이드 자택 거실에서 9·11 당시 신문 보도와 27대 종손이자 외아들이던 준구씨가 남긴 유품을 보고 있는 강성순(왼쪽)·강필순씨 부부.



 아버지 강씨는 “준구는 경제 관련 자격증만 22개나 됐다”며 “아버지 곧 캐딜락 몰게 해드릴게요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아들은 그날 아버지와의 점심약속조차 지키지 못했다. 그렇지만 부부는 곧 슬픔을 추슬렀다. 그리곤 도미니카공화국 수도 산토도밍고 빈민촌에 아들의 이름을 딴 학교를 지난해 개교했다. ‘준구 메모리얼 스쿨’이다. 아버지 강씨는 “이곳의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준구가 못다 이룬 꿈을 펼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저지주 잉글우드클립스 ‘앤드류 김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김평겸(70) 9·11 한인희생자 유족회장도 막내아들 앤드류(당시 26세·한국명 재훈)를 가슴에 묻었다. 그는 아직도 아들이 타던 빨간색 폴크스바겐을 타고 다니고 있다.



 세탁소를 운영했던 김씨는 그날 아침 TV를 보던 직원이 “큰일났다”는 말에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북쪽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직접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테러범이 몬 비행기는 아들이 근무한 프래드 알저 투자회사가 있던 97층 바로 아래 93층을 들이받았다. 김씨는 “온 식구가 뉴욕·뉴저지 일대 모든 병원을 다 뒤졌지만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며 “5일째 되는 날에서야 아들의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앤드류는 엔지니어링과 금융을 전공했지만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피아노·클라리넷·기타는 수준급이어서 교회 밴드도 이끌었다. 활달했던 아들을 보낸 김씨 부부는 회사에서 받은 보상금과 보험금을 모아 2002년 아들 이름을 딴 추모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이후 8년 동안 20여 명에게 장학금을 전했다. 그는 앞으로 재단 활동 범위를 장학사업과 음악회 후원에서 평화포럼으로 확대할 생각이다.



 김씨는 매년 각종 9·11 행사에 참석한다. 그라운드제로에도 4~5차례 갔다. 그러나 부인은 9·11 이후 한번도 그라운드제로에 가지 않았다.



 강씨 부부와 김씨에 따르면 아직까지 뉴욕 일원에 살고 있는 한인 희생자 유족은 5~6가족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한국과 다른 주로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지사=강이종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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