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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국민 거의가 수학문제 풀 줄 아는 나라, 한국은 대단하다”

중앙일보 2011.09.10 00:04 종합 20면 지면보기



[저자에게 듣는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예일대 학사→도쿄대 석사→하버드대 박사학위를 한 후 한국에 정착하며 한국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자신의 성장 과정, 한국과의 인연 등을 풀어놓은 에세이집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를 펴냈다. 부제는 ‘하버드 박사의 한국표류기’.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이만열) 지음, 노마드북스

292쪽, 1만5000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한국 고전문학을 영어와 한국어로 가르치는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47) 교수.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태어나 미주리주에서 자란 미국인인데, 1983년 예일대 입학 이후의 경력이 이채롭다. 25년이 넘게 한·중·일 동북아 고전문학을 천착해 왔다. 대만국립대를 거쳐 도쿄대에서 일본과 중국의 고전문학 비교 연구로 석사학위를(91년), 하버드대에서 중국의 통속소설이 한국과 일본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박사학위를(98년) 받았다. 요즘엔 조선 유교에 매료돼 있다. ‘후마니타스(학장 도정일)’는 경희대가 올해 개설한 통합교양교육 기구다.



 그는 94년 한국어를 처음 배웠다. 서울대 중문학과에서 1년 6개월간 유학하며 인연을 맺은 이후 동북아 3국 중 한국에 가장 애착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 여성과 결혼했고 이만열(李漫烈)이란 한국명을 즐겨 사용한다. ‘이만열’은 본명 임마뉴엘에서 따왔다. 2007년부터 한국에 정착해온 그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를 냈다. 한국어로 쓴 첫 저서다. 자신의 성장·교육과정을 풀어놓았는데 ‘한국사회 비평서’로도 읽힌다. 한국 고전문학에서 출발한 관심이 21세기 한국의 교육과 문화로 확대됐다. 푸른 눈의 인문학자에 비친 한국은 역동적이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 특히 교육분야가 그렇다.



 -한·중·일을 다 체험했다. 3국 문화를 비교한다면.



 “한국에는 중국 송나라의 전통이 살아있다. 유교와 예절을 중시한다. 원나라 이후 중국은 황제 중심의 강력한 통치 흐름이 이어진다. 한국은 송나라 때처럼 지식인 역할이 크다. 정부 역할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의 경우엔 형이상학 전통이 약하다. 현세의 구체적 물질을 강조한다. 하느님이나 추상적 차원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일본에 6년 동안 살 때 그 점이 좀 답답했다. 한국인은 하느님·부처님 등 정신적인 데 관심이 많고, 이념이나 신념을 많이 이야기한다.”



 -90년대 초반의 한국과 지금 한국의 차이는.



 “다문화 사회가 됐다. 우리 집도 다문화 가정이다, 아들·딸이 장충초등학교 다니는데, 학교에 다문화 선생이 있다. 몽골 출신이다. 그만큼 다문화 아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동시에 한국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이 확대됐다. 중국과 동남아·중동·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많은 정치인·공무원·연구자들이 한국을 벤치마킹 하기 위해 온다. 한국은 동아시아 변방의 소국이 아니다. 선진국에 가까운 나라로 발전했다. 아시아의 대도시는 서울을 따라가고 있다. 20년 전 아시아의 문화 발산지는 도쿄였다. 지금은 아니다. 한국의 의료 기술이나 치료 수준은 미국보다 앞서가는 부분이 많다. 많은 한국인이 이런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이번 책에도 썼지만 교육과 관련된 것이다. 학생들이 시험 보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사명감도 부족하고 책에서 배운 것을 실제 삶과 연결시키는 공부도 부족하다. 좀 더 길게 봐야 한다. 학생들은 30대 40대에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대학 입시는 그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학생들 사이의 협력도 많이 필요하다. 경쟁이 너무 심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교육을 칭찬했는데.



 “한국의 경제성장과 연결시켜 한국의 교육 수준이 높다고 본 것 같다. 한국 교육이 강하다면 당연히 영어로도 소개돼야 할 텐데 아직 그런 자료를 별로 보지 못했다. 한국 경쟁력의 중요한 것은 공장 노동자라도 기본적 지식을 갖추고 수학 문제를 풀 줄 안다는 점이다. 미국 공장의 일반 노동자들은 수학을 모른다. 미국의 상위 5~10%는 세계 최고의 교육을 받지만 일반 시민은 다르다. 미국은 대학원이 가장 잘하고 유치원이 잘 안 된다. 한국은 그 반대다. 그리고 한국 초등학교 때 수학·과학을 잘 배운다고 하지만 실제로 숲에 가서 개구리 만져본 학생은 별로 없지 않은가. 생활과 분리된 교육도 문제다.”





예일대 동기, 하버드대서 한국 공부 … 현각 스님과 닮은 꼴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는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에는 ‘하버드 박사의 한국표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정신사적이고 철학적 흐름의 맥락에서 표류란 용어를 사용한다. 서양에서 동양적 사고로의 전환이 느껴진다.



이만열 교수는 현각 스님과 많이 닮았다. 숭산(1927∼2004) 선사(禪師)의 제자로 한국 선불교에 입문해 유명해진 현각 스님은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지내다 지금 독일 뮌헨의 ‘불이선원’ 선원장으로 있다.



 현각 스님과 이만열 교수 두 사람은 예일대 83학번 동기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후 한국 문화에 깊이 빠졌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현각 스님은 한국 불교에서, 이만열 교수는 한국 유교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만열 교수는 인문학 공부를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고, 한국 인문학의 부흥을 바라는 마음을 책 곳곳에 적어 놓았다. 특히 한국에 ‘대화 문화’가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예일대와 하버드대 다닐 때 어쩌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게 되면 밤새도록 서로 질문하고 토론을 하는데 한국에선 그런 걸 잘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저자는 18세기 연암(燕巖) 박지원의 한문소설 10편을 영어로 번역해 냈다. 그는 “해외 도서관에서 한국의 인문학 고전을 찾으려면 바로 벽에 부딪친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한 번역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한국의 고전과 역사를 제대로 영어로 번역한 게 적고, 있다 해도 외국인이 감명 받을 수준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외국인들은 한국이 80년대 갑자기 생긴 나라처럼 느낀다. 오래된 지적 전통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며 “단일 민족 관념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인을 활용해 좀 더 큰 나라를 구상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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