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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떠난 ‘우생순’ 오영란 “이번 추석엔 시댁 가요”

중앙일보 2011.09.10 00:01 종합 27면 지면보기






8일 경기에서 승리한 뒤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하는 오영란. [부천=이영목 기자]



“이번 추석엔 시댁에 가려고요.”



 ‘우생순 1세대’ 오영란(39·인천시체육회) 선수가 대표팀에서 은퇴한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네 번 올림픽에 참가해 은메달 두 개, 동메달 한 개를 따낸 전설의 퇴장이다. ‘우생순’은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이야기를 담아 40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국민의 사랑을 받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2007년)’의 줄임말이다.



오 선수는 9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소속팀에 전념하겠다”는 말로 은퇴의 변을 대신했다. 오래 고심한 끝에 어렵게 내린 결정이다.



 소속팀에선 아직 주전 골키퍼다. 체력이 달려 후배 정미영 선수와 번갈아 뛰지만, 중요한 경기에선 홀로 골문을 지킨다. 방어률 40%가 넘는 신들린 선방 덕분이기도 하지만, 맏언니로서 후배들을 이끄는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속팀 후배 김온아(23) 선수는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뒤(골문)에서 지켜보던 언니가 ‘천천히 해’ ‘리듬감 찾아’ 이렇게 한 마디씩 소리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언니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해진다”고 했다.



 오영란 선수는 ‘여장부’다. 언제나 씩씩하고 거침이 없다. 후배들이 믿고 따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때로는 ‘무서운 언니’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어린 선수들은 처음엔 오 선수 옆에 앉지도 못했다.



 오 선수는 철저한 사람이다. 8일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체전 핸드볼 사전경기 4강전에서 승리한 뒤, 결승에서 만날 팀을 연구하기 위해 또 다른 4강전을 관전했다. 그는 두꺼운 공책에 누가 어느 위치에서 어떤 폼으로 슛을 하는지 일일이 기록했다. 오 선수는 “항상 이렇게 해왔다. 미리 준비를 해둬야 실전에서도 긴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와 아내로서도 씩씩하기만 할까. 절반만 정답이다. 핸드볼 선수인 남편 강일구(35·인천시도시개발)씨에겐 무뚝뚝하단다. 강씨는 “남자랑 사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래도 오 선수가 남편 얘기를 할 때만큼은 사랑이 넘친다. 미혼 후배들이 “저도 핸드볼 하는 남자랑 만날까요”라고 묻자 “일구씨 같은 남자 요즘엔 없다”며 웃었다. 아이에 대해선 더 애틋했다. 엄마·아빠가 집을 비울 때마다 울며 보채던 첫째 서희(6)가 이젠 제법 의젓해져 두 살 난 동생(동희)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해진단다.



 10월 중순이면 2012 런던 올림픽 최종 예선이 중국 창저우(常州)에서 열린다.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태릉선수촌으로 들어가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오영란 선수도 예년 같았으면 또 한참 집을 비워야 했을 것이다. 이젠 후배들 몫이다. 오 선수는 “섭섭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이젠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죠”라고 말했다. 오영란은 “그동안 시댁 어른들께 죄송했는데, 이젠 남편 아이들이랑 맘 편히 시댁에 갈 수 있겠네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글=손애성 기자

사진=이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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