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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에도 그날 공포 … 그래도 305m 1WTC 보며 자부심”

중앙일보 2011.09.09 01:05 종합 16면 지면보기



9·11 테러 그후 10년 下
‘그라운드제로’ 슬픔과 희망



정예 무장경찰 요원들로 구성된 미국 뉴욕경찰청의 대테러 전담부대 ‘헤라클레스팀’ 소속 대원들이 지난 8월 경찰견을 데리고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근처에 있는 원형광장 콜럼버스 서클 주변을 수색하는 모습. 2001년 9·11 테러 이후 창설된 헤라클레스팀은 매일 첩보 등을 토대로 경계가 필요한 뉴욕 곳곳을 순찰하고 있다. [맨해튼 로이터=뉴시스]



2001년 벌어진 9·11 테러는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인의 표정엔 긍지와 아픔, 공포와 희망이 교차하고 있다. 한때 절망했던 사람들도 하나 둘 다시 옛 보금자리로 되돌아오고 있다. 맨해튼 현장을 르포했다.



 #되살아난 자부심=“1WTC 빌딩(9·11 테러로 무너진 옛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다시 세워진 건물의 하나)은 미국인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라운드제로 복구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루이스 저스트리는 감격에 젖었다. 10년 전 그는 맨해튼 소방본부의 구조대원이었다. 세계무역센터(WTC) 북쪽 건물이 불타고 있다는 ‘911(한국의 119에 해당)’ 전화를 받고 출동한 현장은 지옥 그 자체였다. 순식간에 두 동의 건물이 무너지면서 함께 출동했던 동료도 여럿 희생됐다.



 4년 전 소방서에서 정년퇴임한 그는 WTC 복구 현장에 자원했다. 올해 1WTC 건물은 305m까지 올라가 (옛 WTC가 있던) 맨해튼 다운타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됐다. 저스트리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을 우리가 이뤄냈다”고 말했다.



 #일상화된 공포=“모두 대피하시오.” 지난달 23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60층에서 일하던 에이드리언 올리비에리는 사내방송에 깜짝 놀랐다. 건물이 흔들리는 걸 느끼는 순간 10년 전 9월 11일이 떠올랐다. 그는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며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 외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테러가 아닌 지진이었다. 9·11 이후 미국인은 공포와 동거하고 있다. 작은 사고에도 패닉에 빠지기 일쑤다.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혐오는 공포의 다른 얼굴이다. 그라운드제로(9·11 테러로 WTC가 무너진 자리)에서 두 블록 떨어진 모스크(이슬람 사원) 신축 부지엔 낙서나 오물 투기를 막기 위해 요즘 경찰이 24시간 경비를 서고 있다.



 #폐허 위에 싹튼 희망=“언젠가 WTC 건물에 다시 입주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9·11 당시 WTC 1층에서 구두수선점을 운영했던 미나스 폴리크로나키스(70)는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었다. 1969년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맨주먹으로 미국에 건너와 장만한 가게였다.



2년 동안 백방으로 뛰어 40만 달러를 구한 그는 2003년 그라운드제로 인근에 구두수선점을 다시 차렸다. 뉴욕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WTC의 옛 단골들이 소문을 듣고 다시 찾아와 줬다”며 “2014년 준공하는 1WTC 건물에 다시 입주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2001년 8200여 개였던 다운타운의 자영업자는 2003년 7600개로 줄었으나 이후 다시 늘어 지난해 8428개가 됐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세계무역센터(WTC)=1973년 4월 문을 연 110층짜리 초고층 쌍둥이 빌딩 .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지휘한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민항기 두 대를 납치해 쌍둥이 빌딩에 충돌시키면서 WTC는 완전히 붕괴됐다. 이 사건으로 탑승객 전원을 포함해 3000여 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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