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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추석의 유래

중앙일보 2011.09.09 00:26 종합 37면 지면보기








추석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삼국사기』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서기 32년)조에 나온다. 신라 유리왕은 서라벌의 6부(部) 여성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에게 거느리게 했다. 7월 16일 아침 일찍부터 대부(大部) 마당에 모여 길쌈 짜는 시합을 시작해 을야(乙夜·밤 9~11시)에 파하게 했다.



 8월 보름에 그 결과를 따져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해 이긴 쪽에 사례했는데, 이때 노래와 춤과 온갖 유희가 함께 일어난 것이 가배(嘉俳)였다. 가배가 한가위란 뜻이다. 진 쪽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고 탄식하면서 ‘회소! 회소!(會蘇會蘇)’라고 읊었는데 그 음조가 아주 슬프고 아름다워서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서 노래를 짓고는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했다는 기록이다. 2000여 년 전인 서기 32년에 한가위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삼국사기』 잡지(雜志) 제사(祭祀)조에는 혜공왕(惠恭王·재위 765~780) 때 오묘(五廟·다섯 임금의 사당)를 정하고 1년에 여섯 번, 즉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에 제사 지냈다. 추석에 국가가 선왕들에게 제사 지냈다는 뜻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는 “매년 정월 3일과 7일, 5월 5일, 8월 5일과 15일에 맑고 깨끗한 제물(祭物)을 올리는데 대대로 이어져 끊이지 않았다”고 기록해서 가야에서도 추석 때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추석을 중추절(仲秋節)이라고 하는데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중추달에는… 쇠약한 노인들을 봉양한다(仲秋之月…養衰老)”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모든 민간이 함께 즐기는 명절은 아니었다. 당(唐) 현종(玄宗) 때 기록인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따르면 “중추 저녁에 현종이 양귀비와 장안(長安·서안)의 건장궁(建章宮) 태액지(太液池)에서 달맞이를 했는데 이를 관민들이 모방하면서 중추절에 달을 감상하는 습속(習俗)이 형성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 현종의 연호인 개원(開元)·천보(天寶)는 713~756년간이니 중국은 8세기 중엽에야 추석이 명절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추석을 달맞이(月見) 또는 십오야(十五夜)라고 하는데 헤이안시대(平安時代·8세기 말~12세기 말)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배를 타고 수면에 흔들리는 달을 즐기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추석 명절은 우리가 가장 빨랐다. 그만큼 달을 친근하게 여겼던 민족이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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