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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인권 확대… 공산당, 군림 대신 타협 가능성

중앙일보 2011.09.06 16:23
초여름 광시(廣西)성 난닝(南寧)은 무덥다.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행사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제1회 동아시아 정상회의(東亞峰會)다. 지난 3월 중국 국가주석에 취임한 쑨 정차이(孫政才현재 吉林성 당서기차차기 유력 주자)가 주재한 자리였다. 동남아 국가에선 대부분 정상급 인사가 참여했고 한국은 총리가, 일본은 외상이 왔다. 쑨 주석은 각국 인사를 일일이 접견한 뒤 동아시아 발전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밝혔다. 조화로운 동아시아 질서(和諧東亞) 구축을 위해 중국이 조정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게 핵심이었다…. 2023년 5월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취재한 어느 언론사 기자가 쓴 글의 도입부다. 물론 가상 시나리오다. 대중화(大中華)의 시대는 현실화될 것인가.







대중화를 지향하는 중국의 미래 변수는 무엇일까. 지난 30여 년간 중국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던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엄청난 인구, 다른 하나는 공산당이다. 13억 인구가 내뿜는 생산력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다. 그 덕에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G2(미국+중국)시대를 열었다.



또 하나 있다. 같은 인구대국이지만 서구식 민주주의를 채택한 인도와 가장 달랐던 요소는 중국공산당이었다. 일당독재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국가 통합과 사회 통제의 핵심 역할을 했다. 인구와 공산당이라는 두 요소는 8000만 명의 공산당원을 통해 끈끈히 묶여 있다.



지금까지 중국의 인구는 노동력이란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10년 후에는 구매력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어느 나라든 경제발전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소비가 제조업을 제치고 성장을 견인하기 시작한다. 중국은 201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4000달러의 문턱을 넘어섰다. 인구가 갖는 의미에 변화가 일어날 초입 단계다. 소비자들은 자동차와 고급 소비재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20년께 중국의 1인당 GDP는 약 1만30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게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분석이다. 이젠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시기다.



위안화 가치 급등하면 국제통화로 통용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새로운 세계 중산층(The New Global Middle Class)이란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중산층이 2020년에 6억7000만 명(현재 1억57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의 절반 정도가 중산층(1인당 소득 6000~3만 달러)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지출 능력도 높아진다. 중국의 소비액은 현재 전 세계의 약 4%를 차지해 7위 수준이다. 하지만 2020년에는 13%로 확대돼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후엔 중국 소비자들이 최대 고객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 인구의 노령화는 또 다른 변화를 예고한다. 중국은 2001년 이미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7%를 넘는 노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1979년부터 지켜온 1가구 1자녀 정책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2016년부터 실제 노동인구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반면 노인 인구는 해마다 급증한다. 성장률을 깎아먹을 요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는 내수시장 육성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2015년 지금의 두 배로, 2020년에는 세 배로 올릴 계획이다. 수입제품 가격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위안(元)화 가치도 꾸준히 평가절상했다. 2020년께 위안화 가치는 현재 달러당 6위안 안팎에서 2~3위안까지 대폭 오를 수 있다. 그럴 경우 위안화는 달러화와 맞먹는 국제통화로 등장할 것이다.



후안강(胡鞍鋼) 칭화대 교수는 80년대 초 시작된 중국의 성장세가 50년은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30년간 성장률이 10% 안팎이었는데, 향후 10년간 7~8%, 2020년대엔 5% 안팎의 안정적 성장을 할 것이라는 장밋빛 낙관론이다. 근거는 내수주도형 경제체제로의 전환 효과다. 2020년께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PPP·구매력평가 기준)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서방 분석과도 맞아떨어진다. 세계은행은 2030년께 명목환율 기준으로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본다. 물론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 같은 이는 “중국 경제가 구조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중화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려면 필수불가결한 기본 조건이 또 하나 있다. 중국 정치의 안정이다. 특히 2015년 전후에 예상되는 과도기의 경제·사회적 충격을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래서 관심을 끄는 게 중국공산당이다. 세계 최대 정당인 공산당은 ‘일당독재, 민주집중제, 집단지도체제’의 틀을 고수하며 서구식 민주주의를 거부해 왔다. 공산당은 원래 혁명 정당으로 시작했다. 78년 개혁·개방 이후에는 국가 부흥에 앞장서는 행정 정당으로 변신했다. 국가가 직접 경제활동에 나서는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의 전형이다. 앞으로 10년, 중국 공산당은 관리 정당으로 변해갈 것이다. 강압보다 타협 성향이 강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연성(軟性) 공산당이다.



공산당의 변화는 중산층 시대에 생존을 위한 변신이다. 각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중산층은 노동자 계층과 달리 고등교육을 받았고, 국제 정세에 밝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미디어로도 무장했다. 더 이상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못 본 체하지 않는다.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노(No)라고 외칠 만큼 정치의식이 성숙돼 있다. 일당독재를 위협하는 잠재적인 세력이다. 89년 천안문 사태 같은 민주화 열기가 언제든 달아오를 수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를 비롯한 지식인·학생들이 민주·인권·자유를 요구하는 것을 언제까지 힘으로 누를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시진핑(習近平) 지도부는 2017년 집권 2기로 접어들면서 대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중산층과의 대결 구도로는 원만한 통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공산당 독재를 인정하는 대신 공산당은 민주당파(非공산당 정파)와 비정부기구(NGO) 등의 의견과 여론을 정책에 반영하는 통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내 민주화도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의 파워는 약화될 수 있다.



그렇다고 서방 일각에서 제기되는 서구식 민주정치나 다당제를 채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공산당과 맞설 대안 정당의 등장은 곧 국가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중국인들은 잘 알고 있다. 공산당의 존재가 경제발전에 유리하다고 판단된다면 인민들 역시 공산당의 독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지적한 수직형 민주주의(Vertical Democracy)다.



체제 위기 발생 땐 국가자본주의 강화

중국은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이 투자·수출 위주에서 복지·내수 위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2015~2016년 한두 차례의 마찰적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이는 중국과 공산당의 미래를 좌우할 첫 번째 실험대가 될 것이다. 당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역시 강력한 자원 조달 및 배분에 있다.

국가 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체제의 핵심은 국가와 자본의 결합이다. 국유 기업·은행들을 앞세워 전 세계 자원을 쓸어 담고, 다른 나라들의 국채를 사들여 영향력을 높여간다. 공산당이 정치적으로 연성화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막강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10년 후 중국은 수퍼파워의 문턱을 넘어 미국과 마주설 것이다. 경제규모나 인구·군사력·기술수준 등에 가중치를 부과해 산정한 국제 미래 컴퓨터 모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힘은 현재 12%밖에 안 된다.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2025년에는 16%에 달해 미국(18%)의 턱밑까지 추격할 것이다. 균등한 힘은 갈등을 낳는다. 여러 측면에서 미·중은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중국 지도부는 국내 정치용으로 미국과의 적절한 갈등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양국이 정면 대결 구도를 펼칠 수는 없다. 충돌은 공멸을 의미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시장이 필요하고, 미국은 중국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갈등과 타협이 반복되는 형국이다.



중국 학자들은 중국이 역사상 다른 강대국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안강 교수는 힘이 강해지면 패권을 추구하는 게 일반적인 강대국의 모습이지만 수퍼파워 중국은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에서는 다를 수 있다. 수퍼파워의 지위를 굳게 다진 2020년 중국은 스스로를 아시아의 주인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수퍼파워가 아니라 중화(中華)의 부흥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이 꿈꾸는 대중화는 바로 중국의 역대 왕조가 누렸던 아시아의 맹주 자리다. 10년 후 중국인들은 아시아는 원래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속국이라는 옛날 구도를 되살리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주변국과의 영토 문제에 관한 한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강경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국수주의 성향은 식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대중국 경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소비층을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아시아 기업들의 성패가 엇갈린다. 아시아 국가들이 싫든 좋든 중국의 주도권을 인정하게 되는 이유다. 역사상 중국과 주변국의 관계가 조공 구도로 짜였던 것처럼. 2023년 5월 난닝에서 열릴 가상의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그런 고민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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