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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깨우친 한글…70평생 세월을 담은 시를 쓰다

중앙일보 2011.09.06 04:09 2면



[우리동네 이 사람] 시인 꿈꾸는 폐지 줍는 할머니



평안북도가 고향인 이영저 할머니는 주로 예전 겪었던 경험



한 평생 한글을 모르고 살았던 70대 할머니가 인생의 황혼기에 시의 매력에 빠졌다. 이영저(73·사진) 할머니는 매주 열리는 충남학생교육문화원 한글교실 수강생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관절염 때문에 매번 유모차에 몸을 의지해야 하지만 열정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 않다. 열정이 실력을 말해 주 듯 집 안에는 각종 글쓰기 대회에서 받은 표창장이 방 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충남평생교육원에서 주최한 ‘2010북부권역 평생학습발표회 문해백일장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9년엔 ㈔한국문해교육협회에서 주최하는 전국문해백일장 대회에서 장려상을, 2006년엔 충남 서산교육청이 마련한 충남평생학습축제 글짓기 대회에 출전, 최우수상을 받았다.



 화·목요일 한글교실이 열리는 날을 제외하곤 이씨는 매일 새벽 유모차를 끌고 천안시 원성동·문화동을 다니며 폐지를 줍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쌀쌀맞은 이웃을 만날 때도 있지만 일부러 폐지를 모아두었다 건네주는 정 많은 이웃도 있다고 한다.



 이씨는 주머니에 늘 메모지와 볼펜을 넣고 다닌다. 이따금 시상이 떠오르면 그 때마다 메모장에 적어 둔다. 이씨는 낙엽을 유난히 좋아한다. ‘곱게 물든 단풍잎은 배달부/엽서가 되어 편지를 전하네.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바스락 소리를 내며/내 안부를 전하네/내 추억과 세월을 담아 견딘 세월 만큼이나/아름답게 물든 단풍잎이 촉촉한 안개에 얼굴을 닦으면/멈칫 선 곳은 경부고속도로 휴게소. 여기서 잠을 자고/봄이 오면 연둣빛 새싹으로 엽서가 되어서/오던 길을 되돌아 갈거야…’ 메모장이나 종이에 쓴 시와 수필이 수십 편에 이른다.



 특히 이씨의 시 암송 실력은 수준급이다. 하나의 시를 외우는데 10~15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 외우면 웬만해선 잊지 않는다고 한다.



 이씨는 시·동시·시조·성경구절 등 가리지 않는다. 정철, 황진이, 성삼문, 도종환의 작품을 좋아한다.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씨는 “시를 읊다 보면 짧은 구절에 담긴 의미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며 “작품에 몰입해 해석 해봐야 재미있다”고 웃었다.



이씨는 젊은 시절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공부할 형편이 못 됐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6살 때 18살이라고 속여 방직 공장에 취직했다. 여동생의 중학교 학비를 마련했고 가족 생활비를 댔다. 그 와중에서도 이씨는 책을 들었다. 아는 글자가 많지 않아 더듬더듬 수십 번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좋아하던 남편이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이씨는 남편을 떠나 보낸 슬픔을 글로 달랜다. 남편이 떠난 지도 2년이 지났다. 이씨는 아직 ‘남편’에 대한 글은 쓰지 못한다. “남편을 그리는 글을 쓰려고 하면 눈물이 나 도저히 쓰지 못 하겠네.” 아직도 남편은 그리움이자 사랑이다.



이씨의 고향은 이북이다. 평안북도 자성군 지하면. 12살에 떠난 고향이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씨가 눈을 감고 아버지와의 추억, 고향의 그리움을 담아 시를 읊어 내려갔다. ‘칠성바위 위에 초롱꽃 냄새 그윽하고/우리 아버지 바위 밑 폭포수에서 시 한 수 읊으시고/머리 맞대고 살던 쉬뜰골 언제 가 보련가…’ 이씨의 꿈은 자신만의 시집을 내는 것도, 백일장 대회에서 수상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시가 좋고 쓰는 게 좋으니 죽을 때까지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강태우 기자, 조한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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