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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동 백사마을, 옛 풍경 남기고 재개발

중앙일보 2011.09.06 02:02 종합 24면 지면보기



주거지 보존개발 첫 시도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의 보존 개발 이후를 예상한 컴퓨터 그래픽 그림. [서울시 제공]





서울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일대. 번지수를 따 ‘백사마을’로 불리는 달동네다. 이곳이 40년 만에 개발된다. 단 이번에는 개발 방식이 다르다. 판잣집을 밀고 아파트촌을 만든 난곡(관악구 신림동의 옛 달동네) 방식이 아니다. 달동네를 일부 보존하면서 아파트가 들어선다. 달동네를 추억이 아닌 살아 숨쉬는 문화·관광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달동네 보존 개발은 서울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시는 백사마을 주택재개발구역 18만8899㎡ 중 23%(4만2000㎡)를 보존구역으로 설정해 개발한다고 5일 밝혔다. 이렇게 해서 남는 집은 모두 354채다. 안전에 문제가 있는 집은 원형을 살려 새로 짓고, 쓸 만한 집은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이 옆으로 1610가구의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









서울시는 골목길의 폭과 주택 층수는 그대로 둔 상태로 주택을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서울시 제공]













백사마을의 집주인들은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 집이 보존지구에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세입자(750가구)들은 리모델링한 집에 들어가서 살 수 있다. 달동네의 겉은 보존되고, 속은 임대 단지가 되는 셈이다. 2016년 완공이 목표다.



 백사마을은 1967년 도심 개발로 청계천·영등포 등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이주하면서 생겼다. 당시는 경기도 양주군이었다. 이주민 중에는 실향민들이 많아 지금도 마을 공원엔 ‘평양 460리’라고 쓰인 돌판이 있다. 마을의 시작은 천막촌이었다. 99㎡(30평) 남짓한 천막에 네 집이 살았다. 분필로 그은 십자 모양의 선이 집 경계였다.



70년대엔 관공서에서 국수를 받아와 먹었다.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의 성을 따 ‘육여사 국수’라 불렀다. 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후 동네는 쇠락했다. 지금은 경찰서가 붙인 ‘공가(빈집)’ 딱지가 있는 집이 수두룩하다. 37년을 이곳에서 산 정점선(55)씨는 “3분의 2가 빈집”이라며 “외지인들이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산 후 재개발 분쟁을 염려해 아예 세입자를 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백사마을을 한옥마을 같은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썩 반기지 않는다. 바깥 사람들에겐 달동네가 추억이지만 이들에겐 생활이기 때문이다.



김미영(53)씨는 “주민 대부분이 아파트를 바라고 수십 년을 참았다”고 말하며 “달동네를 끼고 있으면 아파트가 제값을 받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백사마을 이 보존개발 방식을 채택하면서 임대주택 건립 규모가 1360가구에서 354가구로 줄었다”며 “그만큼 토지·주택 소유자의 부담이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훈 기자





◆달동네=도시 내 산비탈에 형성된 저층주택 밀집지역. 법적 용어는 아니지만, 해발 40m 이상 지역에 1만㎡당 주택 60채 이상인 곳을 달동네로 볼 수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서울에는 20여 곳이 있다. 이 중 백사마을, 서대문구 개미마을 등을 빼면 대부분 2만㎡ 이하의 소규모다. 그래서 백사마을이나 개미마을을 ‘마지막 달동네’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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