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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홍콩에 온 칠레의 한류 팬

중앙일보 2011.09.06 01:13 종합 38면 지면보기






정용환
홍콩특파원




홍콩의 3대 금융 홍보사로 불리는 ‘iPR오길비’의 대표 엘렌 콩(江)은 열성 한류팬이다. 한국 TV프로그램이 각종 채널을 통해 매달 40편 이상 방송되는 홍콩에서 한류 팬을 만나는 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한류의 비즈니스 잠재력을 높게 보고 전력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엘렌 콩은 남다르다. 대표적 한류 상품인 K팝의 상품성을 외국의 사업가가 알아보고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엘렌 콩은 iPR오길비를 창업해 지난 20년간 골드먼삭스·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을 홍보하면서 쌓아 올린 노하우와 화교권 인맥을 동원해 한류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말 세운 그의 K팝 이벤트사(ELF ASIA)는 처음 몇 개월 동안 팬 미팅을 주선하며 시장성을 탐색했다. 페이스북의 팬클럽을 통해 표를 팔며 한류의 잠재력을 시험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인기 그룹의 가수 중 일부가 나오는 홍콩의 팬 미팅에 세계 화교권 팬들이 몰려왔다. 칠레·스페인·호주·캐나다의 화교 사회에선 한국 대중음악에 열광하는 팬층이 두꺼워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한류 팬들이 영어·중국어로 진행되는 1시간짜리 행사에서 스타를 만나기 위해 15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도 마다 않고 홍콩을 찾는다는 것이다.



 행사 수를 늘려보고 싶었지만 한국의 파트너를 찾는 일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여러 기획사들의 문을 두드렸지만 영어로 의사 전달이 안 되고 고자세에다 현지 실정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번번이 계약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언어 장벽을 낮추고 마케팅을 다듬으면 K팝은 얼마든지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을 텐데 간극이 생각보다 넓어요. 해외의 팬들은 여러 불편 때문에 한국 방문을 주저하거든요.”



 지난 7월 한국으로 3주짜리 한국어 과정을 이수하러 간 엘렌 콩은 인기 K팝 아이돌 그룹인 카라·미스에이·f(x)·2AM·씨엔블루 등 남녀 8개 팀 합동 콘서트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한 장에 1080~1480 홍콩달러(약 15만~20만원)에 달하는 표가 1만 장 이상 판매됐다. 엘렌 콩은 영어와 중국어로 페이스북·트위터의 팬클럽을 공략하는 데 홍보의 초점을 맞췄다. 지하철역은 행사 광고로 덮였고 홍콩의 13개 영자·중문 일간지뿐 아니라 지상파·케이블 방송에서도 홍콩에서 열린 역대 최대 한류 행사라며 비중 있게 다뤘다. 이런 전방위 홍보·마케팅을 통해 얼마 전 홍콩에서 가장 큰 실내 공연장에서 열린 이 콘서트는 이틀간 객석을 모두 메우는 대성황을 이뤘다.



 모바일 빅뱅 시대를 맞아 동시다발적으로 한류 문화 상품이 지구촌 곳곳으로 퍼지는 시대다. 성장 잠재력을 보고 이방인들까지 뛰어들 정도라면 더 적극적으로 한류의 글로벌화 전략을 세워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우려되는 것은 우리 문화상품의 현지화에 도움이 되는 인력이 스스로 나오는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할 텐데 우리는 준비가 덜 됐다는 점이다. 우리의 문화 영토를 넓히는 일이다. 현지 사정에 밝고 실력이 검증된 외국의 파트너를 적극 끌어들이겠다는 열린 마인드 없이는 한류 세계화는 요원한 일이다.



정용환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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