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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통곡의 땅, 기회의 나라

중앙일보 2011.09.06 01:06 종합 39면 지면보기






문창극
대기자




유대인에게 ‘통곡의 벽’이 있듯이 한민족에게는 ‘통곡의 땅’이 있다. 중앙아시아…. 우리에게는 멀고 아득한 나라들이다. 지난주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은 70여 년 전 고려인 디아스포라 현장인 우즈베키스탄을 찾았다. 1937년 9월 어느 날 소련은 연해주 지방에서 번영하고 있던 약 18만 한인 전부를 예고 없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불과 몇 시간의 여유만 주고 떠나도록 명령했다. 고려인들은 짐승처럼 시베리아 화물열차로 5000㎞ 이상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내쫓겼다. 근 한 달 뒤 이들은 거친 들판에 혹은 갈대만 무성한 습지에 버려졌다. 그곳이 바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이었다.



 그러나 한민족은 끈질기고 우수했다. ‘김병화 콜호스’ 기념관에는 한국판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들은 갈대를 베어 움막을 만들었고 시베리아의 칼바람을 온돌로 버티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갈대밭을 엎어 볍씨를 심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쌀농사가 시작된 것이다. 밀과 면화도 심었다. 몇 년이 지나면서 할당된 목표 수확량보다 몇 배의 결실을 보았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다. 소련 정부는 고려인 집단농장의 김병화에게 두 번이나 노력 영웅상을 주었다. 2세, 3세부터는 전문직 종사자도 많아졌다. 교육열 덕분이다. 시베리아 과학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 톰스크 등에서 과학자로 활약하고 있는 많은 한인 후손이 있다. 현재 중앙아시아에는 30만 명, 소련 전체로는 60만 명의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는 문자 그대로 삼성, 현대, LG 간판뿐이며 아파트 창문마다 삼성, LG 에어컨이 경쟁하듯 달려 있다. 거리에는 대우차가 물결을 이루었다. 타슈켄트 역 대합실 천장에 매달린 TV에서 임금 복색을 한 탤런트 유동근씨의 얼굴이 크게 비춰졌을 때 일행 사이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한반도 두 배의 면적에 인구는 남한의 절반을 조금 넘는 이 나라는 비옥한 땅에 무한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이곳에 도착하기 하루 전 이명박 대통령이 다녀갔다. 41억 달러 규모의 가스 화학 플랜트를 세우기로 계약했다. 현지에 공장을 지으면 이 나라도 쓰고, 가까운 아랍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에도 80억 달러의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몽골을 포함해 순방 3개국과 120억 달러의 플랜트 수출 계약을 했다.



 이번 여행 내내 우리 의식에서 잊혀진 대륙을 생각했다. 반도국이지만 냉전으로 대륙과 단절된 우리는 사실상 섬나라가 되었다. 바다를 통해서만 외부와 연결될 수 있었다. 우리는 바다를 통해 무역국으로 일어섰다. 세월이 변해 유럽과 미국은 이제 내리막길로 접어든 느낌이다. 우리 주요 무역 상대도 미국에서 중국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자원이 없는 나라다. 반면에 우리 머리 위 광활한 대륙에는 무한한 자원이 널려 있다. 지도를 펴 보자. 지금은 북한이 가로막고 있지만 언젠가는 만주땅, 연해주,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로 직접 통할 날이 올 것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을 생각했다. 이 좁은 땅에 갇혀 청년실업을 한탄하며 세월을 보내기에는 청춘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우리 조상은 유목민(nomad)이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뉴 노마드가 되어 대륙을 달릴 수는 없을까. 그곳은 학비와 생활비가 저렴하다. 우리 대기업들이 청년인턴들을 대규모로 뽑아 그곳으로 보내 언어와 현지교육을 시키면 어떨까. 성공한 한인 디아스포라들과 멘토십을 맺게 해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을 싫어한다. 일본은 낯설다. 그들은 우리의 기술과 자본을 원하고 있다. 예부터 비단길 길목에 자리잡은 이들은 나그네 대접을 잘했다. 우즈베크인들은 한인 디아스포라의 정착을 도와주었다. 이제는 우리가 도울 차례다.



 우리는 대륙의 꿈을 다시 꾸어야 한다. 북한의 존재로 지금은 불가능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다. 반도국가인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대륙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를 잘 이용해야 한다. 혹시 중국이 우리의 대륙 진출을 막는다면 러시아 연해주를 통해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러시아 천연가스 라인건설은 의미가 있다. 위험부담은 물론 있다. 남북 갈등이 생겼을 때 북한이 가스관을 막을 경우 안보적 위협이 될 수 있다. 금강산 투자 같은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위축되지 말자. 계약조건을 엄격히 하고 긴급 시 대비책을 마련하면 된다. 위험 없이 기회는 없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그 다음은 우리 철도를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하는 것이다. 미국이 19세기 말 서부 개척으로 새 활로를 찾았듯이 우리의 뉴프런티어는 대륙이다.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통곡했던 이 땅을 우리가 기회의 나라로 만들자. 대륙은 우리를 부르고 있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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