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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과일·선인장·라일락도 ‘자원’…경제적 가치 연간 800조원 넘어

중앙일보 2011.09.06 00:25 경제 9면 지면보기



중앙일보·환경부 공동기획 ‘그린 골드’ 시대
나고야 의정서가 바꾼 자원 지도



식욕억제제에 사용되는 선인장 후디아(왼쪽)와 세계 원예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종 미스킴 라일락(오른쪽).





지난해 10월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세계 192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됐다. 골자는 이른바 ‘생물 유전자원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것.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이 한 열대 국가의 토종 과일을 수입한다고 하자. 그냥 먹거리로 파는 것은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이 과일에서 특정 성분을 추출해 의약품이나 건강식품을 만들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유전자원에 대한 주권을 가진 당사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수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까지 합의해야 한다. 에너지·광물 자원뿐 아니라 유전자원까지 국부(國富)가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나고야 의정서는 50개국 이상이 비준해야 공식 발효된다. 전문가들은 ‘50개국 이상’이 별로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어서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의정서가 효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고야 의정서의 발효는 바이오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수많은 의약품의 원료가 생물로부터 직접 나오거나, 힌트를 얻어 개발된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 산업 등에 이용되는 생물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800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막대한 가치를 가진 생물 자원을 ‘보는 사람이 임자’ 격으로 마구 가져다 썼으나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면 일일이 당사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물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생물자원을 많이 가진 나라들과 유전자원 발굴과 이용 등에 관련한 포괄적인 협약을 맺는 게 대표적이다. “앞으로 발견될 유전자원을 다른 나라에 앞서 이용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면 경제와 바이오 산업 발전에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식이다.



 한국도 이미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와 이 같은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며 생물자원이 더욱 풍부한 다른 동남아·남미 국가와의 협약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 고유의 생물자원 목록을 정리하고, 이들에 대한 유전자원 주권이 한국에 있음을 증명하는 일도 시급하다. 자생 생물을 찾아내는 한편 전 세계의 기록을 뒤져 찾아낸 생물이 한국의 고유종임을 입증하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자료를 확보한 국내 자생생물은 3만7000여 종. 일본(9만 종)이나 영국(8만8000여 종)의 절반이 안 된다. 한국보다 한참 앞선 일본과 영국도 찾아낸 자생생물은 존재하는 것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에는 앞으로 찾아내야 할 고유종이 그야말로 산더미 같을 것이라는 얘기다. 고려대 김기중(생명과학부) 교수는 “유전자원에 대한 권리를 뺏기지 않으려면 자생생물 목록 정리와 입증을 서둘러야 한다”며 “전면적인 조사가 어려울 경우 바이오 산업 쪽에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생물자원부터 먼저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병준 기자



 

◆나고야 의정서=A나라 영토나 영해에서 유전이나 광산이 발견되면, 발견자가 외국 회사일지라도 소유권은 당연히 A나라에 있었다. 그런데 유전자원은 지금껏 사정이 달랐다. 반출해 나간 뒤에 신약을 개발하면 개발한 쪽이 이익을 전부 가졌다. 나고야 의정서는 이런 관행을 깨고 이익을 유전자원 보유국과 나누게 했다. 다만 의정서가 발효되기 전에 반출된 생물자원에 대해서는 권리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

글 싣는 순서



① 탄소가 돈이다

② 신연금술, 폐자원 재생

③ 풀 한 포기에도 국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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