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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나는 무모함을 연민한다”

중앙일보 2011.09.06 00:21 종합 37면 지면보기






김동률
서강대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텐트 주위에는 수천 마리의 엘크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빙하호수의 얼음을 핥기 위해 이른 새벽 나들이 온 것이다. 밤새 이빨 부딪치는 소리를 듣다가 잠을 깬 곳은 로키 마운틴 정상. 팔월이지만 한여름 잠깐 개방하는 해발 1만4000피트(4500m) 정상은 얼어붙는 영하의 날씨다. 미국 유학 중 늘 꿈꾼 것은 콜로라도주 로키 마운틴 등정이었다. 북미대륙 중심부에 위치한 로키 마운틴은 캐나다 로키와 함께 북미 대륙의 등줄기에 해당한다. 이 거대한 산맥을 품에 안은 고원 도시가 덴버다.



일찍이 어느 유명 가수가 덴버와 로키 마운틴의 아름다움에 취한 나머지 본명을 버리고 이름마저 덴버로 바꾼다. ‘로키 마운틴 하이(Rocky mountain high)’라는 노래로 산의 유려한 풍광을 역설했던 그가 바로 존 덴버. 그는 결국 스스로 몰던 경비행기 사고로 이 산기슭에 자신의 몸을 묻었다. 그래서 유학 중이던 대학의 현지 교수를 구워 삶아 고단하고도 머나먼 등정길에 나선 것이다.



 지프를 빌려 타고 오프 로드 길을 달려 산 중턱에 주차한 뒤 열네 시간을 죽도록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월마트에서 구입한 입장권 뒷면의 안내 문구가 재미있다. 산 정상에서는 반드시 빙하호수로부터 100피트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바위를 옮기고 용무를 본 뒤 다시 바위를 원위치시켜 달라는 문구다. 희박한 산소에 기진맥진, 간신히 도달한 정상에는 비행기 파편이 얼음 호수 주변에 널려 있다. 워낙 높은 탓에 비행기가 곧잘 산봉우리에 부딪쳐 추락한다고 동행한 교수가 귀띔했다. 내려 오는 길은 더욱 힘들다. 네발짐승처럼 기다시피 내려오다 만난 산기슭, 동상 속의 존 덴버가 말한다. 왜 산에 오르느냐고. 동경해 마지 않던 꿈의 등정은 그렇게 힘들게 끝났지만 그것은 분명 내 삶의 소중한 기억이 되었고, 살아 오면서 가장 흥분되었던 산행 중 하나로 가슴 깊숙이 새겨져 있다.



 여름방학 끝자락인 지난 주말 지리산에 다녀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패한 지리산 종주였다. 제자들과 함께한 종주는 연하천·벽소령·세석을 거쳐 천왕봉을 눈앞에 두고 중단되었다. 학부생 한 명이 열 시간 이상 걷는 산행 후유증으로 무릎 관절이 늘어난 탓이다. 사실 지리산 종주길에서 정상을 눈앞에 두고 동행자들의 부상으로 포기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험난한 한신계곡을 거쳐 백무동으로 내려오던 산길은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참담했다. 철 다리는 파괴되었고 지난여름 긴 장마로 인해 질척대는 길은 분간조차 어려웠다. 캄캄한 새벽 3시에 시작된 하산길은 칠흑 같은 밤 10시쯤 끝났다. 고통스러운 산행에서 돌아온 게 바로 지난주. 실패한 산행에 돌아온 그날부터 한 주 내내 아쉬움 속에 잠을 설친다. 첫날 밤을 보낸 연하천 산장에서 본 새벽 별무리, 운 좋게 만났던 별똥별의 기억에 눈이 부시다. 그러면서 도대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내가 왜 이렇게 무모한 산행을 할까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문득 무모하다는 것은 여전히 꿈꿀 수 있다는 말과 통하지 않을까 여기며 스스로를 위무해 본다. 그런 나는 지금 눈 내리는 겨울 산행을 꿈꾸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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