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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can do spirit” 사라져간다

중앙일보 2011.09.06 00:20 경제 8면 지면보기






박태욱
대기자




어느 정도 예상됐다고는 해도 경제 흐름이 좋지 않다. 8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3%에 달했다. 유난히 잦았던 비로 인한 작황 부진 등의 탓도 물론 있었을 터다. 하지만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뺀 근원물가 상승률도 4.0%에 이르러 2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지금까지 정부가 펼쳐왔던 직접적인 물가 대응책의 약효는 온데간데 없고 이른바 인플레 심리는 점차 강해지는 모습이다. 8월 중 수출이 크게 줄고 수입은 대폭 늘어나면서 19개월 만에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가 10억 달러 선을 밑돌았다. 물론 휴가철 등 계절적 요인으로 예년에도 8월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지난달 무역적자를 걱정한 정부가 월말에 적극적인 수출입관리에 나섰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수출이 성장을 견인하는 구조에서 수출 둔화는 그나마 유지해온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주말 금융연구원은 올 하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했다. 핵심 포인트는 올 성장이 당초 예상보다 둔화(4.4→4.1%)되면서 물가 상승률(4.2%)에 미치지 못하리란 것이다. 물론 아직 많은 변수가 남아있고, 전망치 또한 실망스럽다곤 해도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의 조합(스태그플레이션)을 말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10%든 20%든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누구도 확실한 답을 줄 순 없지만, 대부분이 ‘뭔가 내리막길에 들어선 건 아니냐’ 하는 느낌을 얘기한다. 이 와중에서 흔히 들먹여지는 게 외부변수다. 이른바 ‘작은 개방경제’의 특성상 외부변수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는 것도 맞다. 8월 중 미국의 신규고용 ‘0’란 통계가 가중시킨 더블딥에 대한 우려, 그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우리 성장에 미칠 상대적으로 훨씬 큰 악영향도 큰 걱정거리다.



 하지만 요즘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그런 수치나 외부 환경일까. 그건 단기적 상황이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문제는 어느 길을 걷느냐가 지금 선택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그 궁핍하던 우리 경제가 이만큼까지 온 이유로 제시돼 온 여러 분석틀이 있지만 그중 하나만 꼽으라면 난 이 나라 경제주체들의 활력 - 활기나 역동성, 영어로 vitality나 dynamics라 해도 좋다 - 을 꼽고 싶다. 그것이 사라지고 있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할 수 있다’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20여 년 전 구미 언론이 한국 경제를 소개하며 이를 ‘can do spirit’로 표현할 때 비아냥이 섞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신념과 그를 통해 달성코자 한 열망이 우리 스스로를 다그쳐온 긍정적 에너지가 되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 활력이 이젠 느껴지질 않는다. 외려, 위를 보며 ‘할 수 있다’고 상향지향적 얘기를 꺼냈다가는 시대정신에 뒤떨어진 천덕꾸러기 취급 받기 십상이다. 성장에 보탬이 될 게 분명하다며 전·현 정권이 추진해온 돈 안 붓는 정책들마저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역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당시 주도세력인 현 야당의 정치공세로, 이명박 정부 최대의 경제구조 개혁 프로젝트가 됐어야 할 서비스업 규제 완화는 애당초 예상됐던 기득권층의 반발로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성장 우려는 말뿐이고 정책 방향을 좌우하는 정치권의 시선은 다른 데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권은 ‘해줬으면’ ‘해줄 수 있을까’라는 기대와 의문을 단숨에 뛰어넘어 ‘해주겠다’ ‘왜 못 해줘’라고 나서는 과감한 언어유희가 지배하는 모습이다. 정치세력별로 차이를 주장하지만 지향점은 그게 그거다. 여전히 국민소득 2만 달러 문턱을 기웃대면서도 ‘이만하면 풀어서 나눠 쓸 때 아니냐’고 주입하는 느낌, 그것도 ‘제일 잘사는 나라에 맞춰 그만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장하는 느낌, 속생각은 다른지 몰라도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 큰 걱정은 이런 정치권의 행태가 그동안 우리 경제·사회를 떠받쳐왔던 ‘할 수 있다’는 능동적 노력을, ‘해주겠지’란 수동적 기대로 바꾸는 것, 나아가 그 기대가 무산될 경우 생길 불안과 분노를 키우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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