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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한 현실, 꿈틀대는 욕망…사랑 참 치졸하구나

중앙일보 2011.09.06 00:13 종합 26면 지면보기



소설가 최인석씨 새 장편 『연애, 하는 날』



중견소설가 최인석씨가 불륜을 소재로 한 장편 연애, 하는 날을 냈다. 뻔할 것 같은 스토리를 감칠맛 나게 요리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낡았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칼 같은 느낌? 중견소설가 최인석(58)씨의 새 장편 『연애, 하는 날』(문예중앙)이 그렇다.



 낡았다는 느낌은 새로울 것 없는 소재 때문일 게다. 열 살 가량 차이 나는 고향 오빠와 여동생, 유부남과 유부녀가 돼 다시 만난 두 사람, 돈은 차고 넘치지만 여동생 가정의 단란함에 충격 받아 파괴욕구를 느끼는 오빠, 돈의 편안함에 물들어 차츰 몸과 마음을 망쳐버리고 마는 여동생….



 소설의 두 주인공인 장우와 수진은 파국이 뻔한 ‘불륜 코스’를 차곡차곡 밟는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섹스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는 동안만 유효한 것이다. 소설 제목의 ‘연애’는 풋풋한 첫사랑과 거리가 멀다. 끝내 집을 뛰쳐나온 수진이 장우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만 한번 마음이 떠난 장우를 막지는 못한다.



 이런 이야기 축선(軸線)에 또 하나의 비정상적인 관계, 영화감독 대일과 백화점 여직원 연숙의 이야기가 얽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진의 남편 상곤은 회사 파업에 휘말려 수입이 끊긴다. 때문에 가족들은 수진이 불륜에서 챙긴 수입으로 산다. 치욕스런 삶이다.



 그런데도 소설은 예리한 칼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후벼 판다. 익숙한 재료로 감칠맛을 낸다고 할까. 최씨의 ‘소설 공방’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최씨의 이력을 살펴보자. 그는 또래 중 보기 드문 전업작가다. 엇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동료들이 학교에 자리를 잡거나(임철우·김사인), 영화판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이(이창동) 그는 우직하게 소설을 지켜왔다.



 물론 ‘외도’도 있었다. 연극으로 먼저 예술계와 인연을 맺은 그는 1990년대 중반 자신의 희곡을 직접 연출해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88년에는 박광수 감독의 데뷔작 ‘칠수와 만수’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그의 예술 작품에 나타나는 일관된 특징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그늘, 그곳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눈길을 줘왔다는 점이다. ‘칠수와 만수’의 영화 간판공, 지난해 장편 『그대를 잃은 날부터』에 등장하는 삐딱한 해커, 이번 작품에 나오는 비열한 부동산 관리인 두영 등. 한결같이 그의 작품 속 인물은 불공정한 세상에 불만을 품은 끝에 쉽게 합법의 선을 넘어서는 이들이다.



 이번 소설에서는 특히 연숙이 대일의 영화판 친구들에게 당하는 수모가 인상 깊다. ‘호치민’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연숙, 어느 영화에 출연한 배우냐고 물어 단번에 좌중을 썰렁하게 냉각시킨다. 교양·지식 등 상징자본의 축적과 소비가 사회적 계급을 가르는 표지가 되는 현실을 그린 것이다. 일면 지식인의 허위와 속물근성을 들춰온 ‘홍상수표 영화’마저 연상된다.



 정작 최씨는 자신의 소설 연금술의 비밀에 대해 딱 부러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쓰고 또 쓸 뿐”이라고만 했다.



 그는 “세상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소설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씨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현재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예술이 선전·선동에 나서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 보고 그 결과를 나름의 미학에 따라 성실히 표현할 뿐”이라고 했다. 일종의 예술주의자다.



 낡았지만 날카로운 그의 소설 제목은 다음과 같이 수정해야 할 듯하다. ‘치열하게 사는 날’. 소설은 또 묻는 듯하다. 당신은 얼마나 한장우, 김수진이 아닌가.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최인석
(崔仁碩)
[現] 소설가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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