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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48> 잡스와 애플 35년

중앙일보 2011.09.06 00:03 경제 14면 지면보기



‘최고 지상주의자’ 잡스 앞에 자비는 없었다





지난달 24일 애플의 스티브 잡스(56) 창업자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술렁이게 한 빅 뉴스였죠. 수백만 ‘광신도’를 거느린 스마트 시대의 구루, 한편으론 ‘사이코패스’ ‘인간 착취자’란 별명으로 불리는 악마적 천재. 스티브 잡스의 삶과 애플 35년 역사를 10장의 사진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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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955년 블루 칼라 가정에 입양되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태어난 직후 폴과 클라라 부부에게 입양됐다. 생모는 아버지의 반대로 시리아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홀로 스티브를 낳았다. 그녀는 대학도 안 나온 서민층인 폴 부부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스티브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야 입양을 허락했다. 폴 부부는 툭 하면 집안의 온갖 전자제품을 망가뜨리는 스티브를 전혀 나무라지 않았다. 강하고 독선적인 성격도 사랑으로 감쌌다.



 명문 리드대에 입학한 스티브는 6개월 만에 학교를 관뒀다. 인생에 별 도움도 안 되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부모의 평생 저축을 날려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란다. 대신 ‘캘리그라피’처럼 흥미로운 과목을 청강하고, 인도를 순례했다. 21세 땐 게임업체 아타리의 프로그래머가 됐다.



② 1976년 스티브, 스티브를 만나다



잡스는 76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에 있는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했다. 다섯 살 위인 ‘동네 형’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였다. HP 직원이던 워즈니악은 컴퓨터 천재였다. 회사 설립 전 두 사람은 인근 대학 기숙사를 돌며 ‘블루 박스’라는 물건을 팔았다.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걸게 해주는 불법 장치였다. 어느 날 둘은 워즈니악이 새로 설계한 컴퓨터를 시연했다. 워즈니악에 따르면 그것은 “사상 최초로 인간이 키보드에 글자를 쳐 넣으면서 동시에 앞에 놓인 모니터에 그 글자가 나타나는 걸 본 순간”이었다. 가능성을 알아본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창업을 제안했다. 얼마 뒤 최초의 제품인 애플I이 세상에 나왔다.



③ 1977년 애플II와 ‘리사 프로젝트’



창업 이듬해 애플은 최초의 개인용PC인 애플II를 내놨다. IBM으로 대표되는 대형 컴퓨터만 있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애플은 돈더미에 올라앉았다. 그 무렵 잡스의 옛 여자친구가 딸을 낳았다며 찾아왔다. 이름은 리사. 잡스는 “난 무정자증”이라며 모녀를 가차없이 내쫓았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래 놓곤 새로 시작한 기업용 PC 개발 프로젝트명을 ‘리사’로 지었다. 83년 나온 PC ‘리사’는 너무 비싼 탓에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잡스는 굴하지 않고 리사 프로젝트에서 상용화에 성공한 마우스와 사용자환경(UI)을 적용한 일반용 PC를 내놨다. 매킨토시였다.



④ 1984년 수퍼보울 압도한 매킨토시



84년 1월 수퍼보울 경기 중계방송 중 30초짜리 광고가 나왔다. 군대, 노예화된 군중, 이들을 윽박지르는 대화면 속 ‘빅 브러더(IBM을 상징)’. 이때 한 여성이 뛰어들어와 큰 망치로 대화면을 부숴버린다. 이어지는 내레이션. “1월 24일 애플이 매킨토시를 출시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1984년이 소설 『1984』와 같지 않은지 알게 될 겁니다.”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이 광고는 20세기 최고작으로 꼽힌다. 이후 애플은 혁신의 대명사가 됐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이 회사 슬로건은 반항적 젊은이 사이에 유행어가 됐다.’ 애플 숭배’의 시작이었다.



⑤ 1985년 쫓겨난 창업자, 또 창업하다



잡스는 85년, 자신이 18개월이나 공들여 영입한 CEO 존 스컬리에게 쫓겨났다. 매킨토시는 그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은 IBM에 대패했다.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자신의 벤츠를 거리낌 없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댈 수 있는’(포춘) 인간인 잡스를 옹호해 줄 이는 없었다. 10년 공들인 회사를 잃은 서른 살 청년은 모든 걸 새로 시작했다.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 컴퓨터그래픽(CG) 영화사 픽사를 설립했다. 픽사는 최초의 100% CG영화 ‘토이 스토리’(1995)로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넥스트가 개발한 여러 기술은 2000년대 ‘애플 르네상스’의 시원이 됐다. 잡스는 훗날 픽사를 디즈니에 넘기면서 디즈니 주식 74억 달러어치를 받았다. 지금 그는 디즈니 지분의 7%를 소유한 최대 개인 주주이자 이사회 멤버다.



⑥ 1991년 금발의 로렌, 평생의 사랑



넥스트 사무실은 스탠퍼드대 안에 있었다. 89년 어느 날 스탠퍼드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던 잡스는 한 금발 미녀에게 정신을 빼앗겼다. 청중 중 한 명이던 그녀의 이름은 로렌 파월. 명문 펜실베이니아대 출신의 MBA 과정 학생이었다. 잡스는 용기를 내 데이트 신청을 했다. “저녁을 함께 먹자”는 그의 제안을 로렌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잡스는 예정돼 있던 출장도 포기한 채 그녀와 마주 앉았다. 로렌은 명석하고 합리적이며 의지가 강한 여성이었다. 게다가 잡스처럼 채식주의자였다. 둘은 열애 끝에 91년 결혼했다. 세 남매를 낳는 한편 이제껏 외면했던 리사를 데려와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 뒤늦게나마 아버지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게 된 리사는 훗날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지금은 잡지 편집자이자 작가로 활동 중이다.



⑦ 1997년 왕의 귀환, 제국을 재건하다



그렇다면 ‘잡스 없는 애플’은 어떻게 됐을까. 97년 애플의 적자는 18억 달러에 이르렀다. 애플 이사회는 잡스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맡겼다. 97년 ‘임시(Intern) CEO’로 복귀한 잡스는 1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놨다. 98년 내놓은 ‘아이맥’이 빅 히트를 친 덕분이었다. 기존 PC들과 전혀 다른, 둥글고 컬러풀하며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파격적 디자인이었다. 2000년 잡스는 마침내 정식 CEO가 된다. iCEO란 명칭은 이제 ‘인터넷 CEO’를 의미하는 말이 된다. 새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⑧ 2005년 “죽음은 선물…무모하게 살아라”



2001년 애플은 아이팟을 출시했다. 온라인 음원·동영상 마켓인 아이튠즈도 오픈했다. 이는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조작장치라곤 휠 하나뿐인 아이팟의 놀라운 UI는 세계 소비자들을 열광케 했다. 2004년 잡스는 췌장암 절제 수술을 했다. 1년 뒤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사로 선 그는 역사에 남을 명연설을 한다. 결론 부분의 요지는 이렇다.



 “주위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은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돼 있어요.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느라 자기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야죠. 당신이 정말 뭘 하고 싶은지 당신 마음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마세요. 바보처럼, 갈망하는 삶을 사십시오.”



⑨ 2007년 아이폰·아이패드…신화의 진화



아이팟 이후 애플은 세계인의 머릿속에 ‘라이프 스타일을 창안하는 기업’으로 새로이 자리 잡았다.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 출시는 이를 넘어 글로벌 산업계에 전면적이고 압도적인 충격을 줬다. 잡스가 새 제품을 발표하는 날이면 지구촌 언론과 네티즌의 시선은 온통 그 현장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모스콘센터로 쏠렸다. 검은 터틀넥 스웨터와 리바이스501 청바지를 입은 그는 독설과 자화자찬, 조롱과 감탄사가 뒤섞인 연극적 퍼포먼스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어린 시절부터 되뇌곤 했다는 ‘우주를 놀라게 하자!(Make a Dent in the Universe!)’는 원대한 꿈이 마침내 세계인의 지갑뿐 아니라 마음까지 열게 한 것이다.



⑩ 2011년 스마트 시대의 구루 혹은 독재자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잡스는 애플 CEO에서 물러났다. 2009년 간 이식수술 이후 호전과 악화를 반복해온 건강상태 때문일 게다. 잡스는 역사상 가장 많은 광신도를 거느린 기업가다. 한편으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많은 험담을 듣는 인물이기도 하다. 픽사 부사장을 지낸 파멜라 커윈은 독일 시사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어쩌면 스티브는 어린 시절 높은 곳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는지 몰라요. 그래서 뇌 속의 어느 부분,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사용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부분이 활성화된 거죠.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미래에 뭐가 쿨한 것이 될지 알기에 직원들을 격려하고 재촉하는 거죠. 떠나는 사람도 많지만 최고의 인재들은 남습니다. 그는 최고의 인재들이 최고의 성과를 올리게 합니다. 최고가 아닌 것은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에게는 자비도, 타협도 없습니다. 아이폰을 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버튼이 더 있어야 한다거나 교체할 수 있는 충전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나요? 하지만 잡스는 ‘안 돼. 그건 사용자에게 불편해’라고 생각한 거죠.”



 스티브 잡스를 아주 떠나 보낸 뒤에도 애플의 천재들은 과거와 같은 선구안과 추진력으로 인류의 미래를 뒤흔들 수 있을까. 이제 공은 후계자인 팀 쿡 CEO에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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