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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 함께 반세기 … 국민의 농협으로 거듭나다

중앙일보 2011.09.05 09:16 부동산 및 광고특집 1면 지면보기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농협’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농협’은 농어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가장 사랑받는 대표 브랜드이자 세계적인 협동조합이다. 하지만 농협의 탄생과 역할, 그리고 농협이 주도적으로 펼쳐온 사업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농협의 탄생 시점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농협의 다양한 사업과 성과들을 살펴보자.



이정구 객원기자















농협, 농촌경제 근대화 위해 탄생





















현재의 한국 농협은 1961년 8월 15일 구 농협과 농업은행을 통합해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겸영하는 종합농협으로 탄생했다. 당시 정부는 고리채 해소 등 농촌의 현안을 해결하고 식량 자급 등 농촌경제의 근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농협 조직의 정비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종합농협 출범의 의의는 먼저 전국의 모든 농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계통조직을 구축하고, 중앙회를 통해 농사자금과 화학비료의 공급 등 각종 농업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겸영하는 사업체제는 농민 조합원에게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종합농협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사업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했다.



1907년 근대적 협동조합 시작



지금의 농협은 1961년 탄생했지만 그 이전에도 우리나라는 상부상조 등을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직은 존재해 왔다.



협동조직의 원류는 신라시대부터 존재했던 두레와 조선시대에 활발했던 계와 향약 등이다.



근대적 협동조합의 시초는 전문가들마다 다소 이견이 있으나 1907년 지방금융조합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지방금융조합 설립 이후 광복 이전까지 협동조합은 금융조합·산업조합·조선농회 등 관제조직과 자생적 민간 협동조합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민간 협동조합운동의 대표적 조직은 도쿄 유학생을 중심으로 1926년 설립된 협동조합운동사, 1925년 설립된 천도교 중심의 조선농민사, 1923년 설립된 기독교청년회(YMCA) 중심의 농촌협동조합 등이다.



1957년 정부는 ‘쿠퍼’안에 기초해 특별법인 ‘농업은행법’과 ‘농업협동조합법’을 제정했다. 이후 1958년 5월 7일 농협중앙회가 창립되고, 그해 10월 20일 업무가 개시됐으나 1961년 8월 15일 새로운 농협법에 따라 그해 8월 15일 종합농협이 발족했다.



1960~1970년, 합병·신규사업 추진



1961년 발족한 종합농협은 설립 초기부터 움직임이 활발했다. 농협은 농산물 유통개선과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판매사업 확대에도 주력했다. 62년까지 전국 5대 도시에 공판장을 설치하고 65년에는 중앙회에 공판사업부를 신설했다.



교육사업은 초창기 농협임직원 교육에 치중하다가 66년 농협대학 발족으로 도약의 전기를 맞는다. 재단법인 건국학원이 62년 설립해 운영하던 농협초급대학을 농협중앙회가 66년 인수해 농협대학으로 발족시켰다.



1969~87년은 지역조합이 합병을 통해 성장하고, 농협중앙회가 체제를 정비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현재까지 유지되는 많은 사업들이 닻을 올렸다. 대표적인 사업이 69년 시작돼 농촌사회에 농협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 상호금융이다. 70년에는 생활물자사업이 도입됐다. 그해 2월 중앙회에 ‘생활물자구매사업소’가 만들어졌고, 대규모 단위조합부터 연쇄점(농협하나로마트의 전신)이 개설됐다.



중앙회 예금은 69년 759억원에서 79년 1조36억원으로 10년 만에 10배 이상 성장했고, 단위조합의 상호금융예수금도 같은 기간 32억원에서 590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농협은 국책사업이었던 새마을운동에도 앞장섰다.



1988년 직선제 조합장 시대 열려



88년부터 97년까지는 농협이 명실상부한 농업인 자조단체로 거듭나는 시기였다. 87년 6월항쟁의 민주·자율화 바람은 농협에도 불어 닥쳤다. 61년 종합농협이 발족한 지 27년 만에 이른바 ‘직선제 조합장’ 시대를 연 것이다. 농협 역사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농협은 89년 3월 9일에서 이듬해 3월 말까지 전국 최초의 조합장 직접선거를 치렀다. 곧이어 4월 18일 중앙회장 선거가 실시되면서 제1기 민주농협이 닻을 올렸다.



2000년대 농촌사랑운동 시작



90년대 후반은 97년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온 나라를 뒤흔든 시기였다. 이러한 가운데 2000년 7월 1일 농·축·인삼협중앙회가 하나로 통합돼 새로운 농협중앙회가 출범한다.



도농상생이자 국민상생운동인 ‘농촌사랑운동’이 이 시기에 전개된다. 중앙회 신용사업의 수익센터 역량도 강화됐다. 특히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마무리된 2003년 이후 신용사업이 크게 신장했다. 중앙회 신용사업의 총자산규모는 2003년 130조원 수준에서 2010년 177조원으로 늘었다.



협동조합·경영·국민경제·사회에 다양한 성과















50여 년 동안 성장을 거듭해온 농협은 협동조합, 농협경영, 국민경제, 사회적 측면에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고려대학교 생명자원연구소에서는 최근 농협의 성과와 영향을 분석한 ‘한국 농협의 성과평가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농협은 협동조합 측면에서 경쟁영리회사에 비해 조합원들에게 유리한 가격으로 구매·판매·배당·신용·공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매년 평균 3조5005억원 규모의 조합원 실익을 창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조합원당 143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2009년 호당 농업소득 969만8000원 대비 약 14.7%에 해당하는 규모다.



경영적 측면에서는 최근 5개년 평균 실적을 토대로 영업이익 창출효과를 살펴보면 농협중앙회는 연간 1조878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고 조합은 연간 1조5783억원의 영업이익을 창출해 농협 전체적으로는 연간 2조666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국민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농협의 다양한 사업들은 산업연관효과를 통해 국민경제에 직간접적으로 기여를 하는데 2005년 불변 가격기준 산업연관표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농협사업의 산업연관효과는 24조217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마지막으로 농협은 사회적 측면에서 농축산물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생산을 장려해 생산자 후생을 매년 12조3788억원 증대시킨 것으로 평가됐다. 또 농협으로 인해 농축산물의 생산이 증가하는 효과는 매년 17조8411억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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