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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돈·조직·DJP연대 벽 못 넘었다”

중앙일보 2011.09.05 01:22 종합 3면 지면보기



박찬종 전 의원 인터뷰



박찬종



박찬종 전 의원은 1995년 6월 첫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33.5%를 얻었다. 지금까진 이 득표율이 무소속이 올린 역대 최고 득표율이다. 당시 박 전 의원이 믿었던 건 ‘바람’이었다. 선거 막판까지 그의 여론 지지율은 35~40%로 1위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민주당 조순 후보(42.4%)에게 패했다. 박 전 의원은 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돈도 조직도 없고 근본적으로 취약했던 데다 결정적으로 ‘DJP연대’라는 3김 정치(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의 벽을 넘지 못해 졌다”고 패인을 설명했다.



 - ‘바람’의 선거가 ‘조직’ 선거 앞에 진 셈인데.



 “당시 나는 돈도 조직도 없었다. 서울의 25개 구별 조직책도 채우지 못했고, 차량이 없어 돌아다니지도 못할 정도였다. 근본적으로 (선거를 하기엔) 취약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얻은 33.5%의 득표는 당선권의 득표율이다. 그런데도 왜 졌냐. 당시 조순 후보에게 진 것은 대선 2년 전인 1995년 시장선거에서 사실상 DJP연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DJP연대가 당시 어떻게 이뤄진 건가.



 “95년 초부터 DJ와 JP 양쪽에서 모두 공천 제의가 왔다. 내가 모두 거절했더니 DJP가 손을 잡고 조순 후보를 민 것이다.”



 박 전 의원에 따르면 당시 DJ는 문희상 전 의원, JP는 김용채 총재비서실장을 보내 각각 민주당과 자민련 후보 공천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다 거절 당하자 DJ·JP는 ‘50대 박찬종이 서울시장이 되면 세대교체 바람이 분다’며 자민련이 시장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DJ가 공천한 조순 후보를 지지하기로 손을 잡았다는 게 박 전 의원의 설명이다. 안 원장에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모두 영입을 제안해 온 것, 안 원장이 거절한 것, 안 원장의 필마단기(匹馬單騎) 상황 등이 당시와 비슷하다.



 그는 안 원장에게 덕담도 했다. 박 전 의원은 “그를 만나본 적은 없으나 자질과 능력을 보면 서울시 행정은 꼼꼼히 잘할 거 같다. 나는 3김의 두꺼운 벽 앞에서 33.5%를 얻었는데, 안철수 선생이 이번에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안철수 돌풍’은 박 전 의원의 사례와 다를 것이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역대 대선이나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찬종·정몽준·이인제 후보와 같은 무소속 후보나 제3후보들은 초반에는 여론 지지율에서 1위를 기록하다가 선거 3주 전부터 지지율이 꺾이는 추세였다”며 “ 본격적으로 조직이 가동되기 시작할 때는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고 말했다.



정효식·김경진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박찬종
(朴燦鍾)
[現]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現] 법무법인한우리 고문변호사
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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