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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 꼬인 권혁세 … 대출금리만 올렸다

중앙일보 2011.09.05 00:26 경제 1면 지면보기



가계대출 ‘총량규제’에 한달새 금리 1.6%P 급등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금융회사의 금리부과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겠다.”(7월 19일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방안 세미나’ 축사)



 “(은행들이 가계대출 금리를 올리는 건)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그랬다기보다는 나름대로 대출을 관리하려는 차원으로 이해한다.”(4일 언론 인터뷰)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의 스텝이 꼬였다. 권 원장은 지난 3월 취임 뒤 ‘서민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과도한 예대마진은 곤란하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금리가 오르건 내리건 예대금리 차로 이익을 남기는 은행들의 행태도 자주 비판해 왔다. 하지만 가계대출에 대해 사실상 ‘총량규제’가 도입된 뒤 은행들이 우대금리를 없애는 방식으로 금리를 올리는 건 괜찮다고 옹호한 것이다. 금리라는 정공법이 아닌 창구지도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생긴 모순이다. 덤터기는 고스란히 고객과 서민에게 돌아온다.



 아파트 잔금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 서모(39)씨는 지난 2일 우리은행의 한 지점에 들렀다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지난달만 해도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변동금리 대출을 4% 후반에 해주겠다던 은행이 이번엔 5% 후반으로만 빌려줄 수 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 방침 때문에 신용카드 발급이나 급여 이체 등의 사유에 따라 최고 1.6%포인트 금리를 깎아주던 우대금리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은행의 설명이었다.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우대금리를 없애 고객이 부담하는 실질금리를 올리고 있다. 표면상 대출금리의 상하한선은 그대로지만 낮은 쪽의 금리를 적용받던 고객이 이젠 높은 쪽의 금리를 적용받는다. 지난해 신한은행에서 연 9%대로 3000만원의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받았던 A씨(49)는 지난주 만기연장 때 대출금리가 연 11.5%로 올랐다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직장이나 재산에 변동이 없는데 어떻게 금리를 단번에 2.5%포인트나 올릴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은행은 지난달 초순까지만 해도 최저 연 4%대 중반이던 코픽스 연동대출을 현재 연 5%대 중·후반에 내주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최근 각 영업점 평가 항목에서 가계대출이 제외되면서 지점장 전결금리나 특판대출 등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전했다.



 가계대출 규제는 기존 대출자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CD금리. CD금리는 최근 은행채 금리가 급락하고 있지만 거의 두 달간 제자리다. 신영증권 홍정혜 연구위원은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 영향으로 은행채 금리에 연동하는 CD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면서 “기존 대출의 상당수가 CD 연동형 대출인 상황에서 (시장상황과 달리) CD금리가 내려가지 않아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줄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은행들의 총수신금리와 총대출금리 차이(잔액기준)는 3%포인트에 달해 최근 수년 새 최고 수준에 육박했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사무총장은 “정부 방침을 핑계로 은행들이 이자수익만 늘리려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지급준비율을 인상하는 정공법을 놔둔 채 금융회사 창구지도로 유동성을 줄이겠다는 발상이 통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서강대 남주하(경제학) 교수는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세분화하는 것 같은 일반화된 정책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면서 “이런 정책수단은 놔두고 창구지도로 가계부채를 해결하려고 하면 시장이 왜곡되고 서민이 더 힘들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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