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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소유주 피노가 들고온 1000억어치 미술품

중앙일보 2011.09.03 01:53 종합 2면 지면보기



그가 고르면 유행이 된다 … 컬렉션 2000점 중 22점 국내 전시



2일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Bourgeois Bust-Jeff and Ilona’(1991)앞에 선 제프 쿤스(왼쪽)와 프랑수아 피노. 대리석 조각 속 인물은 쿤스 자신과 전 부인인 이탈리아 포르노스타 치치올리나. [연합뉴스, 작가 제공]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미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른 살이 돼서야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미술관에 가 봤다. 19세기 말 이 지역에서 폴 고갱(1848~1903)과 활동했던 나비파(Nabis) 화가들의 전시였다. 아마추어 화가인 친구는 연신 감탄하며 “이것 좀 봐!” 외쳤지만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해할 수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15년 뒤인 1980년 그는 런던에서 처음으로 미술품 경매장을 찾았다. 나비파 화가 폴 세뤼시에(1864∼1927)의 작품, 그게 그의 첫 주요 컬렉션이었다. 이유는 “그림 속 노파가 우리 할머니를 닮아서.”









칼을 꽂은 소머리 네 개를 포름알데히드에 절인 데이미언 허스트의 조각 ‘Mathew, Mark, Luke and John’(1994∼2003)의 전시 장면. [연합뉴스, 작가 제공]





 오늘날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패션사업의 거인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75)의 회고다. 피노는 명품 브랜드 구찌·입생 로랑, 와인 명가 샤토 라투르, 프렝탕 백화점 등을 보유한 PPR그룹의 수장이자 세계적 경매사 크리스티(Christie’s)의 소유주다. 그는 200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미술관 팔라조 그라시(2006)와 푼타델라 도가나(2009)를 설립하기도 했다. 피노가 본인의 소장품 22점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3일부터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프랑수아 피노 컬렉션:고뇌와 환희(Agony and Ecstacy)’전에 소개된다. 데이미언 허스트(46), 제프 쿤스(56), 무라카미 다카시(48), 신디 셔먼(57) 등 오늘날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4명의 국내 미공개 작품 22점이 나온다.









제프 쿤스의 유화 ‘Dutch Couple’(2007)은 자신을 원숭이로 나타낸 자화상이다. [연합뉴스, 작가 제공]











신디 셔먼의 사진 ‘무제, 발렌시아가 시리즈’(2007∼2008). 네 명모두 명품 발렌시아가 제품으로 치장한 작가 자신이다. [연합뉴스, 작가 제공]



 송은아트스페이스 유형정 책임 큐레이터는 “시장 거래 기록 등을 고려할 때 작품 가액이 총 1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2일 만난 피노는 “미술품 컬렉션이 내 삶을 매력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작품 소장의 기준에 대해서는 “귀의 들림이 아니라 시선의 떨림, 마음의 끌림에 따라 작품을 택한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미술품을 수집했나.



 “40여 년 전부터다. 내 고향은 미술을 향유하기 어려운 시골이었다. 서른 살에 처음으로 미술관을 갔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처음엔 접근 가능한, 뭘 그렸는지 알아볼 수 있는 작품에 주목했다. 인상파·입체파를 거쳐 아주 빠르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오늘날의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왜 미술품을 수집하나.



 “기업가로서, 동시대 미술에서 오늘을 보고 미래를 본다. 동시대를 사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해 과거와 현재를 본다. 작가들의 작품이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며, 세상을 바꾼 것처럼 내 삶 또한 예전보다 매력적으로 변했다.”



 -컬렉션의 기준이라면.



 “마음의 끌림을 중시한다. 귀의 들림, 즉 보통 사람들의 얘기, 비평가들의 평가 같은 것보다는 시선의 떨림, 열정에 근거한다. 덕분에 난 유행에 좌우되지 않고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다.”



 유행을 말하지만 그는 유행을 넘어서는 사람이다. 그가 선택하는 작품이 오늘날의 유행이 된다. 98년 크리스티를 인수했고 2006, 2007년 연속 영국 저명 미술전문지 ‘아트 리뷰’가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올랐다. 이번 전시에 동행한 제프 쿤스는 “피노는 보는 눈이 날카롭다. 작품을 보면 즉각 반응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예술을 통해 경험한 바를 남들과 나누고자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소장품을 선보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반경을 넓히고자 한다”고 말했다. 피노에게 한국 미술에 대해 물었다. 답변은 이랬다. “이우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와 친분도 깊다. 곧 세계적 작가가 될 거다.” 더불어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도 관심 있다. 그러나 예술엔 국적도 경계도 없다.”



◆전시 정보= 세계적인 현대미술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가 소장한 도발적 작품 22점 전시. 칼을 꽂은 채 포름알데히드에 절여진 소의 심장(데이미언 허스트), 과도한 성(性)적 묘사로 이름난 조각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무라카미 다카시) 등이 나왔다. 피노 컬렉션의 아시아 첫 순회전이다. 송은문화재단(이사장 유상덕 삼탄 회장) 주최, 3일부터 11월 19일까지. 무료. 02-3448-0100.



 권근영 기자



◆프랑수아 피노=1936년 프랑스 브르타뉴 태생. 고교를 중퇴하고 제재소로 시작해 PPR그룹을 창립,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미술시장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꼽힌다. 명품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해 ‘브랜드 사냥꾼’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1년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 77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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