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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의 매력 발전소] “고난이 삶의 프로펠러 달아줬죠”

중앙일보 2011.09.03 01:30 주말섹션 14면 지면보기






1972년 미국 뉴욕의 집에서 부모·형과 함께 찍은 앤더슨 쿠퍼의 가족 사진.





만약 집을 짓는다면 담장 한쪽을 대나무로만 채우고 싶다. 대나무의 시원한 푸르름이 좋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대나무의 매듭이 좋기 때문이다. 대나무 담장이 보이는 쪽으로 거실에 통창을 내어 그 푸르름을 누리고, 그 매듭을 바라보며 삶을 다지고 싶다. 사람도 대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매력이 있지 않을까. 푸르름과 매듭의 깊이를 모두 안고 있는.



 인터뷰할 때 지루함을 주기 쉬운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눠보라고 한다면 이렇게 나눠볼 수 있겠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까지는 좋은데 도통 삶에 매듭이 없는 사람 한 부류와, 질풍노도를 넘고 넘어 언뜻 매듭이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매듭에 왠지 뒤틀림이 있고 푸르름이 없는 사람의 부류다.



 CNN의 앵커 앤더슨 쿠퍼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겉모습으로 보아서는 그의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미국 내 유명한 부호 집안의 3세이면서 예일대 출신인 그. 세상적 기준으로 가볍게 생각해보면 출발부터 평탄한 길을 걸어가야 하겠지만 그는 ‘재난 전문기자’라고 이름 붙을 만큼 힘든 경로를 자원해 달려가는 듯했다. 게다가 그는 죽음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생존이라는 화두를 안고 있다. 왜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살아남지 못하는 것인가. 내게 그 대답을 줄 수 있는 곳은 전쟁터밖에 없는 듯했다. 나와 같은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가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마음먹게 된 그 화두. 자신의 형이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투신자살한 소식을 듣고 달려가던 순간 가슴에 박힌 화두. 그 화두를 안고 20여 년 삶과 죽음의 접면에서 투쟁한(?) 그가 그래서 지금쯤 어떤 답을 얻었는지 궁금했고 속내를 듣고 싶었다. 남다른 길을 걸은 그는 어떤 매듭을 만들어 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 밴더빌트(Vanderbilt) 패밀리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부모님이 참 좋으셨던 점 중 하나는 나와 형이 어릴 때도 어른 대접을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은 늘 유명인사로 붐볐죠. 우리는 늘 어른들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 대화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누린 특권이라면 부나 명예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배운 것입니다.”



 그는 기자의 길이 빨리 열리지 않자 가짜 기자증을 만들고 홈비디오를 든 채로 진짜 기자들이 가기 꺼리는, 세상의 카메라가 주목하지 않는 아프리카의 전쟁터로 달려간다.



 “취재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음산하고 더러운 호텔에서 몇 주를 기다리는 것보다 집으로 돌아와 지내는 것이 더 어려웠죠. 지구 저편에서는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건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누구도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다시 그곳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그는 가짜 기자증이 필요 없는 진짜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변함없이 재난과 전쟁의 현장으로 달려가고자 한다.



 “앵커로서 나의 일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실이 아닌지를 밝히는 일이죠.” 그는 직접 보지 않은 것을 아는 척 말하는 앵커를 경계한다.



 그의 책에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런 묘사가 나온다. 대부호인 그의 할아버지는 그의 어머니가 생후 15개월이었을 때 세상을 떠나고, 그의 어머니는 미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양육권 소송에 휘말린다. 이리저리 대륙을 넘나들며 키워지던 그의 어머니는 유모의 손에서만 자라다 기숙학교에서 성장한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어머니의 눈에는 고통과 두려움 같은 것이 깃들어 있곤 했다. 어렸을 적 나는 그 눈빛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내 눈에서 그 눈빛을 보곤 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나는 궁금했던 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 스스로 가슴에 품었던 그 질문은 애초에 정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내 안에 함께 있는 채였다. “그래서 왜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살아남지 못하는지 답을 찾으셨나요?”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는 듯하던 그가 이렇게 답한다. “어떤 사람들은 운명에 의해, 혹은 어린 시절 겪은 여러 가지 일이 내면에서 자라나면서 추진력(프로펠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추진력을 갖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하죠. 저희 어머니는 인생에서 슬픈 일을 여러 번 겪으셨지만 그 프로펠러를 갖고 계시죠. 어떤 일이 생기든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왜 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누구는 프로펠러를 만들어 밀고 나가고, 다른 누군가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왜 누구는 매듭을 만들어 나가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구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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