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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비곗덩어리

중앙일보 2011.09.03 00:25 종합 31면 지면보기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1870년 보불전쟁으로 프로이센에 점령당한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에서 한 새벽 마차가 떠난다. 어울리기 힘들어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이 남행 마차에 몸을 실어 하나의 운명이 된다. 일행 중에는 민주주의 혁명가, 부유한 지방의원 부부, 귀족의 자부심이 몸에 밴 백작 부부, 와인 도매상 부부 그리고 두 명의 수녀와 ‘볼 드 쉬프(Boule de Suif)’-비곗덩어리-라고 불리는 뚱뚱한 창녀가 함께 있었다.



 마차에 동승한 사람들은 비곗덩어리의 외모를 손가락질하며 비웃는다. 그러나 비곗덩어리는 미처 음식을 준비하지 못해 허기진 일행과 자신의 고기와 과일, 와인을 함께 나누는 호의를 베푼다. 이들의 여행은 국경을 지키는 한 프로이센 장교에 의해 난관에 봉착한다. 장교는 여행허가증 말고 또 한 가지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한다. 일행은 온갖 감언이설로 비곗덩어리를 설득한다. 그녀는 고심 끝에 장교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시 출발한 마차에서 일행의 태도는 돌변한다. 비곗덩어리는 일행에게서 다시 돌아온 경멸과 조롱에 비탄의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많이 알려진 기 드 모파상의 소설 ‘비곗덩어리’(1880)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이유는 작금의 우리 정치 현실에 있다. 애당초 생각이 같지 않았던 일단의 정치인들이 한나라당, 민주당 혹은 범진보 야당이라는 이름의 마차에 몸을 실었다. 겉으로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공통 이념을 앞세웠지만 실상 제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인해 매우 불편한 동거였던 것 같다.



 한나라당이라는 마차의 일행 한 명은 산적한 정책 이슈 중 하나인 무상급식 시행 방식에 특별히 집착하더니 주민투표의 길을 선택했다. 서울시민 33%의 투표장 동원에 실패한 시장은 쓸쓸히 마차를 떠났다. 자신의 정치적 운명에 대한 최종 결단을 내린 것이 바로 자신이었으니 할 말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떠난 시장의 등 뒤에서 애초부터 잘못된 결정이었다느니 하며 말만 무성함이 매우 씁쓸하다.



 민주당이라는 마차의 일행들은 앞선 마차의 실책을 틈타 점수를 만회하고자 각자 나름대로의 셈법을 동원하고 있다. 누군가가 자의에 의해서 혹은 등 떠밀려 앞에 서야 될 것이다. 다가오는 보궐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일행들은 또 각자의 살길만 찾으려 할 것이다. 범진보 야당이 함께 탄 마차의 일행 중 한 명은 지난 선거에서 돈으로 경쟁 후보를 매수한 의혹을 받고 있어 곧 마차를 떠나야 될지 모르는 형편이다. 음식을 나누며 잠시 나눴던 우정과 의리도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 정치권 마차에 탄 일행들이 전쟁의 포성 속에서 각자 생존의 길을 찾으며 아우성치는 루앙발 새벽 마차의 일행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임이 안타깝다.



 우리 정치권 마차들에 루앙의 새벽 마차와 차별화되는 희망을 그나마 걸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바라보는 정책 비전, 즉 나름대로의 일관된 정책의 정체성에 대한 기대감이다. 보수이건 진보이건 정당의 존재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 이들에게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책 비전도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오직 눈치 보기와 이기적 처신만이 남아 있다. 경제와 복지를 둘러싼 정쟁 속에서 받은 국민 가슴속 상처의 아픔을 제대로 읽는 정치인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최소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믿었던 마차의 일행들이 모두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으로 다음 선거에서 자신의 생환만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 마차들의 가는 길이 크게 걱정된다.



 루앙의 마차에서 이기적이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단 한 사람이 바로 비곗덩어리였다. 잘 배우지도 못하고 돈도 없고 외모도 보잘것없었던 그녀의 순수한 희생이 일행의 목숨을 구해냈다. 지금 우리에게는 가진 것은 많지만 속물적 위선과 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일행의 야유와 조롱을 모두 감수하며 묵묵히 희생의 길을 선택하는 한 사람의 영웅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 마차에도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마차에도 한 사람의 비곗덩어리가 보이지 않아서 유감이다.



 국민들은 마차들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의 소란스러움에 지쳐가고 있다. 그런 중 국민의 존경과 기대를 받는 몇몇 장외 인사들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부디 타야 할 마차를 잘 선택할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이미 많은 상처를 받은 대한민국이라는 마차의 일행들에게 큰 위안과 믿음을 주기를 기대한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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