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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 기자는 20명, 한국 외교관은 0

중앙일보 2011.08.31 01:16 종합 16면 지면보기






이상언
트리폴리 특파원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가르가레시 거리에 있는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29일 오후(현지시간) 그곳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봤지만 응답이 없었다. 프랑스의 AFP통신이 자국 리비아대사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뉴스를 내보내고 영국의 BBC방송도 자국 외교관이 속속 트리폴리로 복귀하고 있다고 보도한 상태여서 우리 대사관에서도 업무 재개를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대사관 건물에는 태극기만 휘날렸다. 트리폴리의 다른 대사관들이 벌써 시민군의 상징인 적·흑·녹의 3색기를 함께 내걸어 놓은 것과는 대비됐다.



 조대식 대사를 포함해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들은 모두 이웃 나라 튀니지 남부의 휴양지인 제르바 섬에 머물고 있었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안전상의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 대사관 업무를 재개하겠다”는 것이 한국 외교부의 입장이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이 리비아 새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재빠르게 ‘국익 외교’를 벌일 때 우리는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굳게 닫혀 있는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대사관에 헛걸음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호텔에서 리비아 임시정부 부총리인 알리 알이사위를 만났다. 그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묻어났다. 순간 민망함에 기자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리비아에서는 옛 동아건설의 대수로 공사를 포함해 한국 기업들이 굵직한 사업들을 해왔다. 외화 획득의 주요 창구 중 하나였다. 길에 다니는 승용차 중 절반 이상이 한국산이다. 알이사위의 말은 이런 황금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리비아 새 정부와의 적극적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트리폴리에는 현재 9개 한국 언론사의 취재진 약 20명이 머물고 있다. 카다피 잔당들이 모두 사라져 도심 총격전은 이미 끝났다. 다소의 위험이 있다 해도 외교관들도 기자와 마찬가지로 숙명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다른 언론사 취재진에 따르면 주리비아 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기자가 트리폴리에 머물고 있던 지난주 제르바에 도착한 한국 기자들에게 “중앙일보도 트리폴리까지는 못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허위 정보까지 흘리며 기자들의 리비아 입국을 만류했던 것이다. 주리비아 대사관 홈페이지의 ‘경제통상관계’ 항목에는 2006년 7월 5일 이후 올려진 정보가 없다. 참으로 기대난망인 주리비아 한국대사관이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축출에 기여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과 앞으로 어떻게 경쟁해 우리 국익을 지킬지 걱정이 앞선다.



이상언 트리폴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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