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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류샹 “내 손목 잡았지만 … 로블레스는 친구”

중앙일보 2011.08.31 00:56 종합 32면 지면보기



110m 허들 반칙 판정 그후
“그의 행위로 류샹 놀라 중심 잃었다”
심판위, 고의성 상관없이 실격 판정



류샹



“내일 만나면 ‘안녕 친구야’ 하고 인사할 것이다.”



 29일 대구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남자 110m 허들 결승에서 다이론 로블레스(25·쿠바)에게 반칙을 당한 류샹(28·중국)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10m 허들 결승이 끝난 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사무국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중국 대표팀이 IAAF에 공식 항의했다. 류샹이 로블레스의 방해로 경기 진행에 지장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IAAF는 즉시 상소심판위원회를 구성하고 비디오 판독에 들어갔다. 로블레스와 류샹이 9번째 허들을 넘는 순간 상소심판위원회의 핵심 인물 이모레 마트리치(헝가리) IAAF 기술국장의 눈은 예리하게 빛났다. 로블레스의 오른손이 류샹의 왼손을 잡아채는 장면이 TV 영상에 그대로 잡혔다. 마지막 허들을 넘고 골인지점으로 쇄도하는 상황에서도 같은 장면이 포착됐다. 육상규정 163조 2항, ‘트랙 경기 또는 경보 경기 선수가 다른 선수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밀거나 방해할 경우 그 종목에서 실격된다’. 로블레스가 위반한 조항이다. 마트리치 국장은 “고의성 여부는 상관없다. 로블레스의 행위로 류샹이 놀라 중심을 잃었고 그로 인해 스피드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심판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실격판정이 내려졌다.



 쿠바 대표팀 역시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다. 다시 한번 상소심판위원회의 논의가 이어졌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의제기는 기각됐다. 류샹은 쿨한 사나이였다. 경기 후 로블레스와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은 그는 “로블레스가 절대 고의로 내 손을 치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고 변호했다. 방해가 없었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지만 연연하지 않았다. “경기는 경기일 뿐 로블레스와는 경기장 밖에서는 친한 친구다. 즐겁게 경쟁하는 게 좋은데 오늘은 조금 안타깝다”고 했다.



 류샹은 경기가 끝난 뒤 로블레스와 한 방에서 대화를 하다가 실격 소식을 전해 듣고 직접 알려줬다고 한다. 로블레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래?”라고 물어본 뒤 곧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류샹은 ‘만약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면 다시 경기하겠느냐’는 질문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다시 한다면 다른 선수들에게 불공평하다. 그냥 즐겁게 경쟁하고 싶다”고 했다. 금메달은 놓쳤지만 류샹이 보여준 대범함은 세계 육상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류샹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이미 잊었다. 오늘 은메달도 잊었다”고 말했다.



대구=장치혁·오명철 기자



◆상소심판위원회=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 선수가 공식 결과 발표 후 30분 이내 이의를 제기하면 위원회가 소집돼 비디오 판독을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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