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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출총제 있었다면 ‘애플 성공’ 없었다

중앙일보 2011.08.31 00:22 경제 8면 지면보기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8·15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이란 화두가 던져진 가운데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부활에 대한 논의가 감지되고 있다. 출총제 부활의 논거는 간명하다. 출총제가 폐지되고 난 이후 재벌 기업들의 자산과 계열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공생발전’을 강조한 것도 사실은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화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두가 깊은 성찰 없이 ‘정책의 옷’을 입으면 졸속으로 흐르게 된다.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던져진 ‘공정사회’는‘동반성장’으로 변용되었다. 동반성장론은 참여정부 때 폐기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부활을 불렀다. 진입장벽을 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반시장적이다.



 ‘공생발전’의 화두는 정반대의 위험에 놓여 있다. 정치적 반대세력의 입맛대로 재단될 소지가 다분하다. 출총제 폐지는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치적(治績)이다. 출자는 기본적으로 당사자가 판단할 몫이다. 설령 탐욕을 제어하지 못해 문어발식 경영을 일삼았다면, 법으로 규제하느니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놔두는 것이 차라리 낫다. 출자규제를 하는 선진국이 어디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출총제마저 원위치시킨다면 보수정부로서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경제력 집중’의 시각으로 ‘애플의 성공’을 해석할 수 없다. 우리 눈에 스티브 잡스는 탐욕(貪慾)경영의 화신으로 비칠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애플 신화는 ‘아이(i) 시리즈’ 블록버스터 제품의 출시에서 시작됐다. 이는 품질의 문제를 넘은 ‘발상의 전환’인 것이다. ‘OS(iOS)-단말기(아이폰·아이패드)-콘텐트 장터(앱스토어)’로 상징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통합이 그 핵심이다. 애플은 IT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꿨다. 노키아의 사실상 몰락,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휼렛패커드의 PC 사업 분사 등이 그 방증이다. 애플은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떠올랐지만 누구도 경제력 집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가총액 1위는 성공의 그림자일 뿐이다.



 혹자는 우리 재벌을 애플에 비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혁신능력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혁신능력 부족이 우리 재벌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때 출자규제를 부활한다고 혁신능력이 제고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만이 혁신을 가져다 준다. 공정거래법은 ‘경쟁촉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출자규제는 ‘경쟁’이 아닌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경쟁의 결과 상대방을 압도해서 경제력 집중이 커졌다면 큰 문제될 것이 없다. 경쟁효율에 기반하지 않는 경제력 집중이 문제인 것이다.



 경제력 집중의 또 다른 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10대 재벌의 매출액이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매출액 기준 ‘글로벌 500대 기업’의 수가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의 국가경쟁력은 몇 마리의 ‘고래’를 대양으로 내보냈느냐는 것이다.



 우리에게 넘치는 것은 탐욕, 승자독식(勝者獨食) 등 증오를 자극하는 감정적 용어들이다. 부족한 것은 신생기업의 부재와 재벌 3세의 기업가정신의 쇠락이다. 출자규제를 해서 이를 해소할 수는 없다. 출총제 부활에 공생발전의 옷을 입힌다면 이는 정략일 뿐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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