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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큰손 이호재씨, 사재 털어 일본서 환수한 서예·탁본 무상 기증

중앙일보 2011.08.31 00:11 종합 31면 지면보기



신라 명필 김생 글씨 등 128점 서예박물관에





“제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서예박물관에서 제대로 보관하고 그 가치를 연구하는 게 훨씬 의미있겠다 싶었습니다.”



 미술 시장의 큰손, 가나아트센터 이호재(57·사진) 회장은 3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말을 아꼈다. 그는 갖고 있던 서예·탁본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최근 무상 기증했다. 신라 명필 김생(金生·711~?)의 글씨를 비롯한 옛 비석의 탁본과 안평대군·김구·한호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꼽힌 양사언(1517~1584)의 행서, 석봉(石峯) 한호(1543~1605)와 허균(1569~1618)이 서로 시를 적어 교류한 서간집 등 74건 128점이다.



 이 가운데 탁본 유물은 모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리이자 고고학자로 임나일본부설을 개발하는 등 역사 왜곡에 앞장섰던 오가와 게이기치(小川敬吉·1882~1950)의 주도로 1938년 전후에 채탁(採拓)돼 일본으로 반출된 것이다. 이 회장은 “10여 년 전 일본에서 조선총독의 후손으로부터 구입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의 전신) 문화재연구소는 1994년 ‘오가와 게이기치 조사 문화재 자료집’을 펴낸 바 있다. 이 회장이 기증한 탁본 대부분이 이 자료집에 수록돼 있다. 결과적으로 사재를 털어 약탈문화재를 환수해 온 셈이 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중국 베이징의 폴리 옥션에서 송대 서화가 황정견(黃庭堅·1045~1105)의 서예 한 점이 4억3689만 위안(773억여원)에 낙찰됐던 일을 거론했다. 세계에서 공식 거래된 중국 서예 중 최고가 기록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 미술 시장에서 서예의 자리는 초라하다. 이 회장은 “서예는 동아시아 예술·문자 문화의 근간임에도 너무 홀대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노베이션을 준비 중인 서예박물관은 이번 기증 유물을 내년 9월 특별전에서 일괄 공개할 예정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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