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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여자마라톤 동료애 …‘대구 전설’ 시작됐다

중앙일보 2011.08.29 01:50 종합 10면 지면보기



넘어진 동료 기다리고도 … 키플라갓·젭투·체롭 1·2·3위



여자 마라톤 금·은·동메달을 휩쓴 케냐 선수들이 경기 후 기뻐하고 있다. 왼쪽부터 프리스카 젭투(은메달), 샤론 체롭(동메달), 에드나 키플라갓(금메달). [대구 AP=연합뉴스]











케냐의 키플라갓(왼쪽)이 레이스 도중 넘어 지자 같은 팀 동료 체롭이 달려가 도와주고 있다. [KBS 화면촬영]



케냐가 27일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첫날 여자 마라톤에서 금·은·동메달을 쓸어 담았다. 케냐의 에드나 키플라갓(32), 프리스카 젭투(27), 샤론 체롭(27)이 각각 금·은·동메달을 따냈다. 키플라갓은 대회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케냐의 승리는 전설이 될 것이다. 한국인에게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 2, 3위를 휩쓴 1950년 보스턴 마라톤이 그렇듯이. 케냐의 승리 뒤에는 훈훈한 동료애가 녹아 있었다.



 키플라갓은 선두권 선수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40㎞ 지점 대구육상 조직위원회 앞에서 넘어졌다. 급수대에 놓인 물병을 집으려다 바로 뒤에서 달리던 동료 체롭의 다리에 걸려 땅바닥에 무릎을 찧은 것이다.



 키플라갓은 곧바로 일어났지만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키플라갓만 놀란 건 아니었다. 몇 발짝 앞서 나갔던 체롭이 다시 돌아와 키플라갓을 일으켜주려 했다. 바로 뒤에서 3위로 급수대에 도착한 젭투도 속도를 줄였다. 동료들의 배려에 힘입어 키플라갓은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다.



 사고 발생 전 4~5m 간격으로 일렬 종대를 이뤘던 세 선수는 한 덩어리가 되어 뛰기 시작했다. 키플라갓은 무릎 통증을 참으며 막판 스퍼트해 2시간28분43초로 맨 먼저 골인지점을 통과했다. 젭투가 2시간29분00초로 2위, 체롭은 2시간29분14초로 3위를 차지했다.



 충돌 사고로 키플라갓이 손해본 시간은 1~2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2위였던 체롭이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면 거리가 벌어질 수 있었다. 오창석(배재대 교수) KBS 해설위원은 “마라톤에서 한 번 페이스가 흔들리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키플라갓이 넘어진 사이 체롭이 가속도를 살려 질주했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케냐의 세 선수는 대회 전부터 “우리는 한 팀으로 뛸 것”이라고 말했었다. 체롭은 “친구이자 동료인 키플라갓이 쓰러진 것을 보고 그냥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케냐 마라톤 대표팀은 지난 4월 보스턴 마라톤에서 1, 3, 4위를 휩쓸었다. 체롭은 3위를 차지했다.



 골인 후 다친 무릎을 만지던 키플라갓은 이내 뒤돌아서 차례로 골인하는 동료들을 껴안고 고마움과 기쁨을 나눴다. 그는 “넘어진 뒤 부상이 심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몸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페이스를 유지했다”고 기뻐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마라톤에서 같은 국가 선수들이 1~3위를 휩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케냐는 이번 대회 번외 종목인 여자 마라톤 단체전에서도 1위에 올랐다.



 우승자 키플라갓은 케냐의 장거리 유망주다. 지난해 3월 자신의 두 번째 완주였던 LA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뉴욕마라톤까지 제패하며 뒤늦게 재능을 꽃피웠다. 올 3월 런던마라톤에서는 3위를 했다. 2시간20분46초로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며 나이 서른을 넘겨 세계 여자마라톤계의 중심에 진입했다.



대구=장치혁 기자



◆마라톤 단체전=번외경기로 열리며 5명 중 상위 3명의 성적을 합산해 순위를 정한다. 상금은 금메달 2만 달러, 은메달 1만5000달러, 동메달 1만2000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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