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변덕 심한 산 중턱 토끼

중앙일보 2011.08.29 00:25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세빛둥둥섬 앞 퍼포먼스는 강렬했다. 한강 위에 떠 있는 돈과 식판의 모형. 그 위에 붙어 있는 구호는 ‘주민투표 NO’. 구명조끼를 입은 주민투표 반대론자들은 한강으로 뛰어 들어 외쳤다. “세빛둥둥섬 짓는 데 964억원 쓰면서 아이들 무상급식은 왜?”



 이 퍼포먼스, 어젠다 싸움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밀린 이유를 설명한다.



 ‘나쁜 투표 ! 착한 거부 !’ 이 구호는 “아이들 밥값! 투표 거리가 됩니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오 전 시장이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보이자 이런 말도 나왔다. “아이들에게 밥 주지 말자며 우는 시장은 처음 봤다.”



 이쯤 되니 유권자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런 네이밍(작명)과 구호는 ‘중도’들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도록 잡아 둔 힘이 됐다.



 이번 투표 결과를 살펴보면 오 전 시장은 선방했다. 그가 진 게임이 아니다. 무승부였다. 주민투표의 투표율 25.7%(215만9095명 투표)는 지난해 서울시장선거 때 그의 득표율 25.4%(208만6127표, 총 유권자 대비)보다 조금 높다. 그는 집토끼들을 확실히 지켰다. 하지만 거기에 그쳤다. 산토끼를 잡지 못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득표율은 25.1%(205만9715표)였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후보의 득표율 1.7%(14만3459표)까지 합해도 범진보 진영의 득표율은 26.8%였다. 보수와 진보는 25% 안팎의 확실한 집토끼가 있는 셈이다.



 결국 선거의 승부는 절반에 달하는 산 중턱 토끼를 누가 잡느냐로 갈린다. 이 토끼들의 특징은 좋게 말하면 유연하고, 나쁘게 말하면 변덕이 심하다. 쉽게 마음을 안 준다. 이쪽으로 올 듯하다가, 저쪽으로 간다. 애 간장을 태운다.



 그래서 이들을 잡기 위한 ‘말의 성찬’이 차려진다. 오 전 시장 측이 산 중턱 토끼들에게 내세운 밥상은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냐?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냐?’였다. 이런 식단, 물린다. 또 그 밥에 그 반찬이냐는 투정이 나왔다. 산 중턱 토끼들이 밥상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이유다.



 이렇게 밥상 잘못 차려 손님 쫓아낸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후폭풍은 거세다. 벌써 권력 레이스의 출발 총성이 울렸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의 총선과 대선. 앞으로 이들 선거는 말과 말이 부딪히는 말의 싸움으로 격화할 게 뻔하다. 찬밥에 물 만 것 같은 식단으로 입맛 까다로운 산 중턱 토끼들을 끌어낼 리 없다. 더 자극적이고, 현혹하는 말들이 춤을 출 것이다. 여야는 지금 머리를 싸매고 있다. 유권자의 가슴을 파고들 ‘네이밍’을 고안하기 위해서다.



 이럴수록 유권자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말로 치장하는 싸움이 격해질수록 그 말의 본질을 꿰뚫는 건 유권자의 몫이다. 모든 말이 진실은 아닐 것이다. 거짓과 허풍을 가려내는 게 현명한 유권자다. 한편으론 달고 한편으론 쓴 게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다.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