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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암태도 소년’ 천정배의 방황

중앙일보 2011.08.29 00:24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수년 전 나는 전라남도 암태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택시기사는 한 마을을 가리키며 “천정배 의원이 자란 곳”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암태도 소년은 ‘목포고 3대 천재’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다. 그러곤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를 지내다 1996년 국회의원이 됐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법무부 장관도 지냈으며 지금 수도권 4선이자 민주당 최고위원이다. 이 정도면 암태도의 자랑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이다. 내용과 궤적을 보면 암태도 소년은 아직도 대도시 서울에서 방황하고 있다. 역사의 큰 길을 찾지 못하고 저(抵)품격과 혼돈의 뒷골목에서 헤매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언행의 인격과 논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원에서 열린 장외집회에서 그는 “헛소리하며 국민을 실망시키는 이명박 정권을 확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비판가들을 “XX”라는 쌍소리로 비난하기도 했다. 일국의 국무위원을 지낸 사람이 국민 앞에서 파출소 취객처럼 행동한 것이다. 2009년 2월 대정부 질문에서는 희한한 쿠데타 논리를 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국민주권을 짓밟고, 하늘을 거스르는 7개 분야 쿠데타를 자행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법무장관을 지낸 지식인이 쿠데타라는 말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천정배는 현재의 소리(小利)를 위해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자기 배반을 저지르고 있다. 그가 법무장관이던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미국과 타결했다. 천 장관은 협정을 찬양하고 국회 비준을 촉구하는 관계장관 성명에 서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8월 초 그는 미국 의회전문지에 글을 실어 미국 의회가 협정에 반대하라고 부추겼다. 그는 협정이 “미국의 무역적자를 확대함으로써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처럼 미국도 중산층이 어려워지니 협정은 한·미 동맹에 해롭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7년에 타결된 1차협정대로라면 미국의 일자리는 더 줄어드는데 천정배는 왜 그때는 협정을 적극 지지했나.



 천정배는 분단·대치 국가의 안보현실에 대해 변방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법무장관은 법을 엄정히 수호해 국가 안보와 질서를 지켜야 하는 자리다. 노 정권 때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김일성의 6·25 전쟁을 찬양해 검찰이 구속하려고 했다. 그런데 천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하라고 했다. 국회의원 천정배는 친북·종북·맹북 인사를 옹호하는 데 주력했다. 간첩 송두율에 대한 비판을 색깔론이라고 매도했다. 김일성·김정일 노선을 찬양한 친북운동가 강희남을 “평생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한 분”이라고 미화했다.



 천 의원은 국회의원 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모른다. 2009년 7월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하자 그는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 열심히 일하라고 유권자가 뽑아준 의원직을 자기 마음대로 던져버리고 5개월 동안 거리와 시장으로 돌았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노무현에 비해 일관성이 3분의 1도 안 된다. 그는 어제 서울시장에 도전하면서 다시 의원직을 던졌다. 나중에 후보가 되면 그때 사퇴하고, 안 되면 계속 의원직을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것인데 왜 지금 던지나. 의원직이 무슨 분리수거하는 쓰레기라도 되는가. 그럴 의원직이라면 왜 그리 달라고 애걸했나. 도무지 논리와 명분이 서질 않는다.



 섬 소년이 성실과 능력으로 서울에서 반듯한 국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건 온 국민이 바라는 드라마다. 암태도나 목포 사람만의 희망이 아니다. 천정배 의원은 그런 기대를 방황의 뒷골목에 쑤셔놓고 있다. 자신은 의원직을 던져도 변호사로 품위 있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암태도 소년에게 걸었던 많은 이의 정신적 생계는 누가 책임지나.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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