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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바이칼의 얼굴

중앙일보 2011.08.29 00:21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눈부신 햇살 아래 바이칼은 온몸을 반짝이며 몽골-시베리아 고원에 길게 누워있었다. 창세 이전의 정적(靜寂)이 이랬을까? 호수 건너편 바위산 자락이 만들어낸 자연의 조각상, 입을 가린 ‘바이칼의 얼굴’이 태초의 시선으로 이방인의 발걸음을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문명이라는 이름의 누더기를 걸치고 원융무애(圓融無碍)한 대자연 앞에 선 극동의 나그네를….



 마침 보름이었다. 바이칼 호수 위에 뜬 보름달은 이제껏 보아온 달이 아니었다. 숨 막힐 듯 투명한 고원의 밤하늘을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인 바이칼의 만월(滿月)은 구름의 무리조차 얼씬거리지 못할 만큼 신성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현대자동차의 낡은 버스를 번갈아 타며 울란바토르에서 이르쿠츠크, 리스트비안카를 거쳐 바이칼로 달려가는 길은 온통 시푸른 초원, 끝없는 자작나무 숲이었다. 아마존의 밀림이 병들고 극지의 빙하마저 녹아내리는 이즈음, 수심 1637m의 아득한 깊이에서 수정처럼 맑은 물을 솟구쳐내는 바이칼은 마지막 남은 지구 생태계의 보고(寶庫)가 아닐까?



 세계에서 가장 깊고 가장 깨끗하며 저수량이 가장 많은 호수, 산꼭대기 민물에 바다물개와 오믈 등 수백여 종의 고유한 어족 자원을 품고 있는 유일한 담수(淡水) 생태계··· 바이칼은 진화가 시작되기 전의 원형인 듯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시인은 노래했을 것이다. “우리가 있기 전에 우리가 오고 / 우리가 있기 전에 우리가 그리워한 곳”이라고(신대철 ‘바이칼 키스’).



 몽골리안의 본향인 바이칼 지역은 북아시아 샤머니즘 문화권의 모태이기도 하다. 낯익은 장승·솟대·서낭당들이 바이칼 인근 곳곳에 서 있었다. 몽골에 인접한 카자흐스탄 대평원의 이름인 텡기스(Tengis)는 ‘바다’라는 뜻으로 바이칼의 별칭이자 무속신앙의 신 텡그리(Tengri)와 칭기스칸이라는 호칭의 어원(語源)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말의 ‘당골’ 또는 백두산 ‘천지’와도 뜻이나 발음이 매우 흡사하다. 바이칼 지역의 토착민인 부랴트인의 언어는 우리말과 같은 알타이어로 분류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바이칼 일대를 뒤덮은 자작나무는 한반도의 중북부에서도 자라는데, 부랴트인들은 자작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여긴다.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향을 사르며 기원을 올리는 부랴트인들의 모습은 신단수 아래에 신시(神市)를 연 단군설화의 수목신앙(樹木信仰)을 연상시킨다.



 바이칼에 둘러싸인 알혼 섬의 부르한 바위는 한국의 무속인들이 하늘의 정기(精氣)를 내려 받으려고 자주 찾는 곳이다. 그네들은 백두산의 옛 이름 불함산(不咸山)이 부르한에서 왔다고 믿는다. 우리네 혈맥(血脈)의 뿌리가 바이칼의 정기(精氣)에 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한민족의 북방기원설을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바이칼의 얼굴과 마주 대하고 서면 아마도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다.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에 위치한 바이칼 지역은 물과 초원, 삼림, 그리고 석탄·석유·구리·우라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반면에 인구는 매우 적다. 천혜(天惠)의 자연에 개발의 삽 자락을 들이대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생태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본적 인프라만 갖춰도 이 지역의 발전 가능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클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연방정부와 부랴트 자치정부도 바이칼 일대에 관광과 경제개발을 위한 자유지역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랜 사회주의 체제의 타성과 한계 때문에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의 과학기술과 바이칼의 자연이 만난다면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자본은 물론이고 영토분쟁의 갈등을 안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자본이 유입되는 것을 몹시 꺼린다. 한국인들이 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며칠 전 남북의 정상들이 같은 시기에 몽골-시베리아 지역을 방문했다. 우연한 일일까, 역사의 흐름일까? 북한의 절대권력자가 바이칼 호수에 배를 띄웠다는데, 입을 가린 채 전율할 듯한 침묵으로 응시하는 바이칼의 얼굴 앞에서 어떤 성찰을, 아니 어떤 회오(悔悟)를 품었을지 궁금하다.



 남과 북의 한민족이 언젠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중앙아시아의 초원에 말을 휘몰아 내달리는 날을 꿈꿔본다. 바이칼의 얼굴이 드디어 입술을 열고 말을 걸어오는 그날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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