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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밥 맞고 쫓겨간 초라한 공권력

중앙일보 2011.08.27 00:14 종합 34면 지면보기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벌어진 경찰서장 김밥세례와 억류 사건은 추락한 공권력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경찰은 시위대의 부당한 요구에 무릎을 꿇었고, 시위대가 무서워 경찰서 정문을 걸어 잠근 채 뒤에 숨었다. ‘강정마을 굴욕’이란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불법·탈법 행위를 수개월째 방관해 오다 자초한 봉변(逢變)이요 망신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고 국가에 위임한 강제력이 공권력이다. 이런 공권력 실추는 불법행위를 방관해 온 정권에게도 책임이 크다.



 한편의 슬픈 희극이었다. 경찰은 24일 오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공사 방해 혐의로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 등을 체포했지만 오히려 시위대에 7시간 동안 포위당했다. 봉쇄(封鎖)가 풀린 과정은 더 황당하다. 현행범을 경찰차 대신 해군기지 반대 측 차량으로 연행하고, 경찰의 채증(採證) 자료를 무효화한다는 시위대 측의 초법적 요구를 덥석 받아들였다. 시위대가 던진 김밥 밥알들이 덕지덕지 붙은 송양화 서귀포경찰서장의 뒤통수 사진은 참담할 지경이다.



 현장은 난장판이요 무법천지였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문정현 신부는 경찰 차량 위에 뛰어오르기도 했고, 일부 시위대는 몸에 쇠사슬을 감고 바닥에 드러누웠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는 4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있었지만 100여 명의 시위대에 밀려 속수무책이었다. 서귀포경찰서에 몰려간 시위대가 무서워 경찰은 경찰서 정문을 닫아걸고 피했다. 떼법과 불법이 공권력을 철저히 농락한 것이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은 2007년 4월 노무현 정권 때 결정됐다. 그동안 주민 여론조사, 도지사 소환 주민투표, 사업 무효 소송 등을 거치면서 합법적 절차를 모두 마친 국책사업이다. 그렇다면 공사가 원활히 진척되도록 하는 게 순리다. 몇몇 반대파와 외부 육지 세력이 반대한다고 표류하게 할 수 없다. 전체 예산 약 9800억원 가운데 1400억원가량이 투입된 상태에서 지난 6월 공사가 중단됐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생명평화결사’ 등 외부 세력들이 반대파 주민들과 합류해 현장에서 농성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도 공권력은 이들의 불법 행위에 눈을 감고 피해 오다 결국 치욕적인 일까지 당하게 됐다.



 일부 단체들은 다음 달 3일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현지를 방문하는 ‘평화의 비행기’ 행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제2의 한진중공업 사태’를 만들어 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경찰은 이념 충돌로 1만4000여 명이 숨진 ‘4·3사건’이라는 아픈 역사 때문에 공권력 행사에 주저할 수 있다. 하지만 변명에 불과하다. 저마다 외치는 탈법적 목소리와 행위를 공권력이 뒷짐 지고 바라만 보면 사회질서는 무너진다. 정권의 신뢰와 권위도 땅에 떨어진다. 불법에 대한 엄중한 형사처벌은 말할 것도 없다. 민사 책임을 함께 물어야 한다. 기지 공사 중단으로 매달 59억8000만원씩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평화의 섬’ 제주를 일부 이념집단의 놀이터로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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