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폐렴을 감기약으로 ?

중앙일보 2011.08.27 00:09 종합 35면 지면보기






조윤제
서강대학교 교수·경제학




위기는 축적된 경제흐름의 왜곡을 시장이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털어내려는 몸부림과 같은 것이다. 시장과 정부에 근본적 구조조정과 제도의 개혁이 필요함을 파열음으로 보여주는 것이 위기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도 그런 것이었다. 미국 경제는 자산가격 거품으로 가계소득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소비로 호황을 누린 지가 오래되었고, 가계와 금융기관의 부채는 과다했고 저축률은 과소했다. 그것을 지지해 준 것이 이런저런 이유로 포장된 느슨한 통화정책이었고, 금융가의 로비에 포획된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였다. 시장은 이를 지속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터지게 된 것이다.



 위기 후 미국과 유럽은 이에 대해 다시 초팽창적 거시정책의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물론 위기 시에 심리적 공포감으로 인한 과도한 경제 위축을 막기 위해 팽창적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은 경제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개혁 없이는 왜곡된 경제흐름과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이다. 가계와 금융기업의 과다부채 조정, 자산 축소가 빠르게 진행되도록 해야 하나 이에 따르는 고통을 정치권도 국민도 감내하려 하지 않았다. 집값이나 기업가치, 과다부채가 충분히 조정되었다고 시장이 보지 않기 때문에 초저금리하에서도 신용경색이 지속되고 있다.



 생산성 향상과 소득증가를 웃도는 과소비와 과부채로 초래된 위기는 고통과 내핍 없이는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위기 후 이미 4년째로 접어들었음에도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팽창적 거시정책을 상습적 진통제처럼 쓰고, 금융시스템 개혁을 포함해 금융위기가 요구하는 경제의 구조조정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버드대 로고프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폐렴에 감기약을 처방한 꼴이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경제 불안이 지속되는 근본적 요인이라 보여진다.



 이는 또한 오늘날 각국의 정치와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신뢰의 위기라 보여진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는 미래세대가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고 당장의 고통을 줄이려는 해법이 시장에서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된 것이 작금의 시장불안 현상이다. 따라서 당분간 세계경제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민간부문의 과다부채로 인한 위기가 재정위기로 전이되어 더 이상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는 데다 위기 후 세계경제 회복을 견인해온 중국마저 과다 팽창정책으로 인플레를 겪으며 더 이상 팽창정책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진행될 수밖에 없을 선진국들의 과다부채와 자산가치의 조정 과정은 세계경제의 위축을 깊고 오래 가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도 위기 후 주로 팽창적 정책기조에 의존하고 구조조정은 지연시켜 오고 있다. 세계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한 나라라고 자랑하지만 결국 환율의 대폭 절하, 중국의 과도한 팽창정책, 그리고 스스로의 팽창정책에 기댄 결과다. 위기를 잘 극복하는 것은 단순히 성장률을 빨리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를 통해 경제의 취약한 부분을 털어내고 새살이 돋아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는 길이다. 필요할 때는 경기위축을 감수하고 구조적 조정을 해나가야 한다. 경기위축을 피하기 위해 부실 건설사, 저축은행, 취약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마냥 미루려 해서는 안 된다. 금리를 정상화해 이들에 필요한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하고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을 부추기려 하기보다 완만한 하향안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세계경제는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락, 70∼80년 만의 침체 가능성으로 큰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다져놓지 않으면 어디로 휩쓸려가게 될지 모른다.



 장기적으로 경제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그물망같이 얽혀있는 담합과 유착 관계,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각종 제도들을 과감히 개혁해 어느 부문에서나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기회가 열려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는 우리의 감독 행태가 다시 외환위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음을 보여준다. 감독기능은 성장률 목표에 눌려버렸고 적기시정조치는 적기에 발동하지 않았다. 감독기관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피감기관과의 관행적 유착 관계를 수술하지 않고서는 건전한 감독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경제의 물길이 원활히 흐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도랑의 청소가 필요하다. 4대 강에 쌓인 모래만 파낼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바닥에 쌓이는 찌꺼기도 퍼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오래가지 않아 다시 경제의 물길은 범람하게 될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학교 교수·경제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