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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길 안 보여 목수 생활, 루카스 집 공사하다 발탁

중앙선데이 2011.08.21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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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영화 역사상 흥행 파워 1위 해리슨 포드









할리우드 영화계에 유대인이 많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다. 제작자·시나리오 작가·영화 음악가·감독의 상당수가 유대인이다. 유대인 배우 또한 많다. 원로급엔 커크 더글러스·토니 커티스·로렌 바콜로부터 더스틴 호프먼·데브라 윙거·새라 제시카 파커·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있다. 신진으론 제임스 프랑코·스칼릿 조핸슨·레이철 맥아덤스·사이아 라보프 등이 있다. 유대인 연기자들은 세대별로 존재감이 뚜렷하다.



배우가 오래 인기를 누리려면 연기력과 함께 흥행성이 있어야 한다. 외모는 반짝 인기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톱 클래스 반열에 오르긴 어렵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연기력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배우를 찾는 게 쉽지 않다. 해리슨 포드(사진) 정도가 이런 범주에 속한다.



포드는 1942년 시카고 태생이다.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어머니는 벨라루스계 유대인이다. 말하자면 반쪽 유대인인데 이럴 때 유대인에겐 어머니가 중요하다. 아버지가 유대인이 아니어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은 자동적으로 유대인이다.



‘스타워즈’ 출연하며 뚜렷한 인상

포드는 위스콘신주 리펀 칼리지에서 드라마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학업을 접는다. 배우가 되기 위해 무작정 할리우드로 떠난 것이다. 어렵사리 컬럼비아스튜디오에 주급 150달러를 받는 일자리를 얻었지만 배역이란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64년부터 2년간 한 장면 스쳐가는 역만 걸렸다. 대사는 한마디도 없었다. 행인, 호텔 벨보이, 주인공에게 총을 맞고 쓰러지는 악당, 공사장 인부, 트럭 운전사 등 다양했다. 67년에서야 외마디 대사가 있는 단역이 주어졌지만 한두 장면에 그쳤다.



크게 낙담한 포드는 영화판을 떠나 한동안 부업인 목수로 돌아간다. 그런데 목수 일이 결과적으로 그에게 기회를 가져왔다. 포드는 제작자 겸 감독인 조지 루커스의 서재를 만들다 그와 친해진다. 그리고 영화 ‘대부’의 감독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사무실 공사를 맡아 코폴라와도 얼굴을 익힌다. 그는 드디어 73년 루커스가 제작·감독한 영화 ‘청춘낙서(American Graffiti)’에 건달 역으로 몇 장면 얼굴을 내민다. 77년엔 루커스 감독이 만든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편에서 해적선 선장 한스 솔로 역을 맡아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79년엔 코폴라 감독의 대작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에 조연으로 출연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80년대 초가 되자 포드는 인생의 대전기를 맞는다. 루커스와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공동 기획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타이틀 롤에 발탁된 것이다. 여기에도 행운이 따랐다. 제작진은 원래 이 역을 당시 유명 액션배우 톰 셀렉에게 제의했다. 그런데 셀렉의 스케줄 중복 문제로 캐스팅이 불발됐다. 스필버그는 포드를 대타로 기용하면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는데, 예상대로 영화는 대성공을 거둔다. 포드는 이 영화로 할리우드의 확실한 티켓 파워가 되었다. 무려 15년을 무명으로 지내다 나이 40이 다 되어 대스타 반열에 오른 것이다. 81년에 첫선을 보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84, 89, 2008년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제작됐고 만들어질 때마다 대박 흥행을 터뜨렸다. 중절모·가죽 재킷·채찍의 3종 세트는 이 영화가 만든 캐릭터 상품이다.



포드 정도의 연기력이라면 아카데미(오스카)나 골든 글러브상을 한 차례쯤 받을 만도 한데 그는 몇 차례 후보 지명에만 올랐을 뿐 수상엔 실패했다. 흥행 배우란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인 듯하다. 수상 가능성이 가장 컸던 작품은 85년 ‘위트니스’였다. 이 영화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에이미시(현대문명을 거부하는 신교 원리주의자)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물이었다. 형사 역을 맡은 포드는 이 영화에서 물오른 연기로 유력한 오스카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윌리엄 허트에게 자리를 내줬다.



게리 쿠퍼·폴 뉴먼 잇는 미국 ‘국민배우’

그러나 포드는 흥행 배우론 항상 상위권 순위를 차지했다. 97년 영국 월간 영화지 ‘엠파이어’는 시대를 망라한 흥행 배우 명단 100명 중 포드를 1위에 올렸다. 포드는 40년 연기 인생을 통해 약 60여 편의 영화와 TV극에 출연했다. 절반 정도는 무명시절 작품이지만 그래도 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는 약 67억 달러(약 7조20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많은 미국 유대계 연예인처럼 포드 역시 민주당 지지자다.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포드는 동료 배우 리처드 기어와 같이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성원한다. 그래서 중국은 포드의 중국·티베트 입국을 금지시켰다. 그는 환경운동에도 관심이 많고 적지 않은 성금을 낸다.



포드는 할리우드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가 유대인이어서 유대인 밀어주기의 덕을 보았다는 구설도 있다. 하지만 무명 시절이 유난히 길었던 포드가 유대인 지원으로 대스타가 됐다는 주장은 무리다. 다만 그가 주연한 영화의 제작자나 감독 중 상당수가 유대인인 것은 사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앨런 파쿨라·로만 폴란스키·피터 하이엄스·마이크 니콜스·시드니 폴락·존 파브로·이반 라이트먼·제러미 케이건 등은 포드와 작업한 대표적 유대인 명감독들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포드에겐 모든 배역을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기자란 평판이 항상 따른다. 그가 게리 쿠퍼·로버트 테일러·찰턴 헤스턴·폴 뉴먼 등 전설적 명배우의 맥을 잇는 미국 ‘남성 국민배우’란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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