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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로 사는 이유

중앙선데이 2011.08.21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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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얼핏 우수한 머리에, 좋은 학벌에, 든든한 집안 배경까지 가졌다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만 같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듣는 얘기는 좀 다르다. 기왕이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쪽이, 또 지방대 출신이 오히려 더 의욕적이고 성실하다는 것이다. 부모 뒷바라지로 성적을 유지한 학생들은 직장에서 능동적으로 일을 찾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부모 재산이 많을수록 이직률이나 조기 퇴사율도 높다. 부자 부모를 두었으니 상속받는 돈으로 평생 살 수 있는데 쥐꼬리만 한 월급에 혹사만 시키는 것 같은 직장이 태반이니 쉽게 그만두어 버리기도 한다. 겨우 이런 일을 하려고 그동안 돈 들여 공부했나 하는 생각으로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수한 스펙을 가진 젊은이들도 요즘엔 많다.



심리학계에서는 과연 어떤 성격이나 환경 요인이 직장에서 적응을 잘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출퇴근을 엄격히 관리하고 비난하고 꾸중한다고 해서 직무수행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요소가 과연 직장에 헌신하게 하는지에 대한 조사들을 보면 주관적인 행복도와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 직장에 충실하다고 결론짓는다. 허드렛일, 잡일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직장 초년생들은 결국 백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고, 그만두어도 대안이 있는 젊은이들에 비해 해고되면 갈 곳도 없고 딸린 식구 때문에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50대가 오히려 고용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생계유지를 위한 직업과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을 나누어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실현에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하찮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아실현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직장은 없다. 의사도 처음에는 면도하고, 배설물 받아내고 검사결과 갖고 오는 심부름부터 한다. 법조인 등 전문직들도 역시 처음에는 윗사람들이 시키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을 군말 없이 해야 한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단순하고 재미없는 일들만 우선 새내기에게 떨어지게 된다. 머리 좋고 스펙 좋고 가정 좋은 이들이 견디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공부하면서 우수하다는 얘기만 들었다면 자존심이 더 상할 것이다. 결국 다시 고시를 보겠다, 공무원시험을 보겠다, 다른 자격증을 따겠다 하며 시간을 낭비하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삶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무조건 남을 딛고 일어서라, 네 몫을 챙겨라 하며 이기심만 키우는 식도 문제다. 협력하지 못하고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면 아무리 뛰어나도 직장에서 버티지 못한다. 윤리도덕심이 없어 큰 사고를 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제 똑똑한 기업들은 학벌, 자격증, 영어 실력만 믿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심층면접을 실시하고 인성·적성 검사나 창의성 테스트 등을 해보는 이유다.



그동안 많은 정신과의사나 교육학자들은 자녀들을 도덕심 없는 수동적인 로봇을 만드는 가정과 학교의 교육환경에 대해 경고해 왔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확인되지 않아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 거의 한 세대가 지나, 그런 젊은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부모들도 점점 늘고 있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백수로 사는 젊은이들 때문에 사회적 비용과 낭비도 만만치 않다. 냉정하게 자업자득이라고 말하기에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 참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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