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B, 추상·현학적 표현 꺼려 DJ는 4단계‘빨간 펜’ 작업

중앙선데이 2011.08.21 01:27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 스타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서로 보살피는 따뜻한 사회가 돼야 한다”며 ‘공생 발전’을 새로운 국정 화두로 제시했다. [중앙포토]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생 발전’을 들고 나왔다. “발전의 양(量) 못지않게 발전의 질(質)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경축사는 어떻게 나왔을까. 준비는 두 달 전인 6월 중순 시작됐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독회(讀會)가 일곱 차례 열렸다.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은 학계·언론계·종교계 인사 등 30여 명에게 우리 사회의 화두와 방향을 묻고 취합했다. 두 차례 수석회의를 거치며 나온 기조가 ‘따뜻한 사회, 사회 통합’이다. 이를 바탕으로 7월 중순 연설문 초안이 나왔다.



류우익 전 실장 제안에 ‘공생’ 이름 붙여

이달 초 청해대로 휴가를 떠난 이 대통령은 박형준 대통령 특보가 다듬은 3차 원고를 들고 갔다. ‘공생 발전’이란 개념은 휴가지에서 나왔다. 류우익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제안하고 이 대통령이 공생으로 이름 붙여 ‘공생 성장’으로 출발한 뒤 박 특보가 ‘발전’이란 개념을 추가했다. 미국의 재정 위기가 터진 6차 독회 과정에선 재정 건전성 문제가 추가됐다. 지난 12일 7차 독회에서 원고가 완성됐지만 이 대통령은 13일과 14일에도 새로 썼다. 박 특보는 “대통령은 남북, 한·일 관계를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북한 태도에 따라 대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축적이고 절제된 언어로 전달하려 애썼다”고 전했다.



올해 경축사에선 공생 발전이란 다소 낯선 표현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원래 추상적이거나 현학적인 단어를 꺼린다. 그의 언어는 대체로 구체적 표현으로 가득하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스타일이다. 비서실이 준비한 추석 선물 문구까지 고칠 정도다.











대통령의 통치는 ‘입’에서 시작된다. 위기의 순간에 민심을 달래고, 혼란의 시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말의 힘’에서 나온다. 특히 나라가 독립되고 정부가 수립된 8·15를 기념하는 대통령의 경축사엔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다. 경축사의 내용은 9월 국회를 앞둔 정부 예산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상철 성균관대 교수(스피치학)는 “대통령의 언어와 담론이 국가의 우선 과제를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대중 정치인 출신인 김영삼(YS)·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심을 사기 위한 대국민 연설에 각고의 노력을 쏟았다.



DJ는 연설문 작성에 철저했다. 고치고 다듬은 뒤 또 수정했다. 2001년 3월 29일 인천국제공항 개항식을 앞두고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선 DJ에게 기념사 원고를 올려 보냈다. 며칠 후 DJ가 직접 고친 완성본이 내려왔는데, 원고 여백엔 빼곡히 수정된 글이 적혔다(사진) .



DJ 청와대에서 연설 원고를 담당했던 강원국 당시 행정관은 이렇게 소개했다.

“DJ의 빨간 펜 작업은 4단계였다. 단어 몇 개만 고치는 1단계는 원고가 흡족했다는 뜻이다. 2단계는 일부 단락에 줄을 긋고 여백에 수정 문안을 넣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가 많았다. 3단계는 원고 전체에 ‘X’자를 긋고 뒷면에 직접 글을 썼다. 4단계가 최악이다. 직접 녹음한 테이프를 비서실에 내려 보냈다. 테이프를 풀어서 연설문을 완전히 새로 쓰라는 지시다. 우리는 ‘폭탄’이라고 불렀다.”

2000년 1월 20일 새천년민주당 창당대회의 총재 취임사 원고 때 ‘폭탄’이 떨어졌다. DJ가 테이프를 내려 보냈다. DJ는 또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이 올린 한 원고의 ‘재테크’ 단어엔 줄을 여러 차례 긋고 여백에 ‘재테크는 일본식 표현입니다’라고 적은 적도 있었다.



DJ는 원고가 완성되면 현장에선 수정하지 않았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다. 준비되지 않은 즉석 연설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게 DJ의 연설 철학이다.



많이 고치기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DJ 못지않았다. 그는 막판까지 연설문을 고쳐 담당자를 애태우는 ‘초치기형’이었다.



DJ 청와대에 이어 노무현 청와대에선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강원국씨에게 2005년 2월 25일 새벽 3시30분 노 대통령의 전화가 왔다.



▶노 대통령=원고는 다 됐습니까.

▶강 비서관=3분의 2쯤 됐습니다.

▶노 대통령=그럼 e-메일로 제게 보내세요. 내가 쓰겠습니다. 고마 주무세요.



원고는 전날 완성된 상태였다. 그러나 오후 10시쯤 노 대통령이 “맘에 차지 않는다”며 강 비서관을 청와대 관저로 호출했다. 수정 사항에 대한 지시가 50여 분간 이어졌다. 그럼에도 미덥지 않았던지 노 대통령이 새벽 3시30분 전화를 걸어 직접 작성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새벽 5시30분에야 완성된 원고를 e-메일로 연설비서관실로 보냈다. 그리고 4시간 30분 뒤인 오전 10시 국회 본회의장에 섰다.



노무현, 완전 원고 만들고도 애드리브

연설 현장의 노 전 대통령은 DJ와 달리 ‘청중 교감’을 중요시했다. 원고를 열심히 준비했지만 현장에선 원고에 없는 애드리브(즉흥 연설)도 거리낌 없이 구사했다. “청중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낭독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게 노 전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었다. 2005년 2월 25일 국회 연설에서도 밤을 새워 원고를 준비하고도 즉석 연설을 추가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연구한 ‘선진 한국’을 대통령이 표절했다는데 증명 자료를 주시면 로열티 지급을 검토하겠다”고 말해 폭소를 끌어냈다.



YS에겐 연설을 다듬는 작업과 함께 보안도 중요했다.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공직자 재산공개 실시 등 워낙 ‘중대 발표’도 많았다. YS는 1993년 8월 초 휴가 중이던 김정남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융실명제 도입과 관련해 담화문 원고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당연히 함구령도 함께 떨어졌다. 통상 대통령의 담화나 연설 원고는 공보수석실이 맡는다. 하지만 YS는 금융실명제와 같은 중대 사안을 발표할 때는 김 수석 등 별도 라인에 맡겼다.



YS 청와대의 신우재 당시 공보수석은 “YS는 길고 복잡한 설명 대신 짧지만 분명한 문장을 선호했다”고 전했다. 취임사엔 “우리 국민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입니다” 등의 단문 메시지가 이어졌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을 남긴 YS의 ‘단문·선명 화법’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계속됐다.



최상연·채병건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