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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섬에 뜬 ‘구원의 방주’ … 조화와 중용을 말하다

중앙선데이 2011.08.21 01:06 232호 19면 지면보기
강화도는 시간의 섬이다. 섬에 고이고 쌓인 시간의 켜들은 고스란히 역사가 되었다. 이 땅에 하늘이 처음 열리던 때부터 강화도는 역사의 중심이었다. 국조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참성단은 우뚝 솟은 문명의 돛이다. 서해, 그 동아시아 지중해에 떠있는 배가 바로 강화도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68> 성공회 강화성당

시간의 섬 중심부를 거닐며 지상의 배 한 척을 본다. 강화읍 내 성공회(聖公會) 강화성당 터는 ‘구원의 방주’ 형국이다. 한옥 건물은 자연스럽게 배의 선실이 된다. 터키 아라라트산 구원의 방주가 떠오른다. 개화기 때 성공회 초기 선교사들이 이곳 강화도에 한옥 성당을 세운 건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이오나(iona) 섬처럼 신앙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뜻이 있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눈에 익은 절집이나 향교 건물, 반가의 고택과 다름이 없다. 성당 바로 못 미쳐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곳에 세운 용흥궁과도 잘 어울린다. 서로 이질감 없는 풍경을 연출한다. 공간 구성과 건축양식의 토착화가 낳은 결과다.

한국 전통 건축양식과 바실리카 양식을 혼합해 지은 성당 내부. 백두산에서 벌목한 목재로 지었다. 신동연 기자
우리는 늘 소통과 통섭을 말한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차이와 다름으로 서로 엇박자가 날 때가 많다. 때로는 신분과 이념 차이로 양 극단에 서서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한두 번쯤 손을 내밀어보고 조율해본다. 절실한 경우에는 수도 없이 애를 써보기도 한다. 교감은커녕 도리어 골이 깊어지고 벽이 높아진다.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라고, 서로 걸맞지 않은 관계라고 결론 짓고 각기 다른 길을 간다. 그렇게 기나긴 불통의 세월을 보낸다.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와의 교감을 모색하고 있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양 극단 어딘가에서 서슬 퍼런 날을 세우고 있는가. 조화와 중용(中庸)의 미덕을 필요로 할 때 찾아갈 만한 장소가 성공회 강화성당이다. 종교적인 편견 없이 공간을 산책하거나 성당 안에 들어가 명상하다 보면 저절로 해답이 찾아진다.

언덕배기가 일어서는 초입, 뱃머리에 해당하는 남서쪽에 솟을대문이 서 있다. 한국 전통 건축양식의 외삼문이다. 절집에서는 일주문에 해당한다. 계단을 오른다. 외삼문 대문 중앙에 태극문양을 배경으로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문을 지나면 내삼문이 나타난다. 절집 천왕문에 해당하는데 종루(鐘樓)를 겸했다. 범종과 흡사하다. 당좌(撞座:때리는 부위)의 돋을새김 십자가 문양이 다를 뿐이다. 애초 영국에서 들여온 종은 1943년 대동아전쟁 당시 일제가 정문 계단 철재 난간과 함께 공출해 갔다. 지금의 종은 1989년 다시 만들었다. 조금 전 지나쳐온 철재 난간은 2010년 일본성공회 측에서 한·일 양국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봉헌했다고 한다.

정면에 2층 팔작지붕집이 나타난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건물이다. 한국성공회 제3대 주교 트롤로프가 설계하고 감독했다. 백두산 원시림에서 적송을 뗏목으로 엮어 운반해 와 지었다. 고려 때는 궁궐터였고 1894년 한국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 학당 군사교관 콜웰 대위의 관사가 있었던 땅이었다. 건물 측면과 뒷면의 아치형 출입문 4개는 영국에서 가지고 들어왔다.

‘천주성전(天主聖殿)’ 현판이 들어온다. 절집 ‘대웅전(大雄殿)’이나 문묘 ‘대성전(大聖殿)’에 익숙한 한국인들로서는 전혀 거부감이 없다. 다섯 개의 정면 기둥에는 주련(柱聯)이 드리워져 있다. 유교 경전에서 따와 조합해낸 글귀다.

“무시무종 선작형성 진주재(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
선인선의 율조증제 대권형(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

“처음도 끝도 없고 형태와 소리를 처음 지으신 분이 진정한 주재자시다. 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여 드디어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시다.”

건물 앞마당 오른편에 커다란 보리수가 한 그루 서 있다. 영국에 다녀오던 신부가 인도에서 10년생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수령이 100년이 넘었다. 확실치 않지만 나무를 심은 이는 트롤로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건물 왼편에는 자유분방하게 가지를 뻗은 회화나무가 서 있다.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불리는 나무다. 보리수는 석가모니의 득도를 상징하고 회화나무는 유교의 선비를 상징한다. 성당 건물은 두 나무 중심축에 자리 잡았다. 먼저 전래되어 뿌리내린 종교들과 융합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상징은 집단무의식의 표현이다. 종교적 상징은 사람들로 하여금 궁극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통합하는 작용을 한다. 유교와 불교의 상징 사이에 자리 잡은 성공회의 상징은 셋이서 함께 어우러져 또 다른 상징을 낳는다. 새로운 상징은 새로운 종교의 길을 예시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마루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는다. 중앙부가 높은 천장과 양쪽으로 날개가 달린 바실리카 양식이다. 회중석(會衆席) 뒤쪽 중앙에 돌로 된 성수대(聖水臺)가 놓였다. 지성소와 제대가 예스럽다. 제대 위에 ‘만유진원(萬有眞原)’, 만물의 참된 근원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하느님을 뜻한다. 오른쪽 벽에 성당 깃발이 걸렸다. 칼과 두 개의 열쇠가 수놓아진 배너다. 바울의 검과 베드로의 천국열쇠를 뜻한다. 이 성당을 지키는 두 성인, 바울과 베드로를 상징한다.

“매일 새벽 5시 반, 배의 뒤쪽 고물 부위에 있는 사제관에서 지성소로 갑니다. 항해 나가는 마음으로 감사성찬례(미사)를 드리지요. 100명의 신도들이 앉아있는 회중석을 향하지 않고 북동쪽을 향해서요. 제대 방향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지요. 문화재라서 고치지 못합니다. 요즘 같은 때면 예배 마칠 무렵에 먼동이 틉니다. 축복이 서광처럼 비추는 느낌입니다. 우리 성공회 입장에서는 못자리와도 같은 곳이 강화성당입니다.” 이곳에서 2년 반째 시무하고 있는 이갑수(49) 관할사제는 국란을 극복해온 강화도가 축복받은 땅이라고 한다. 땅이 기름지고 풍수해가 적다는 것이다.

밖으로 나와 보리수 그늘 아래 작은 돌의자에 앉았다. 어지러운 사바세계를 넘어 극락정토로 갈 때 타는 불교의 반야용선(般若龍船)에 오른 느낌이다. 인생아, 앞으로 나아가는 범선의 이물에 타고 앉아서 희망가를 부를 수 있다면 무엇이 근심걱정이랴. 반야용선에 드리워진 끈을 악착같이 붙들고 매달리며 가야 하는 것이 문제다. ‘악착같다’는 말은 악착보살(齷齪菩薩)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던가.
푸른 보리수 이파리가 바람에 살랑댄다.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배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명예를 탐하고 건강을 염려하며 돈을 더 벌기 위해 안달하는 일상, 맘몬(재물) 우상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에게 어짊과 의로움을 의연하게 지켜갈 용기가 있을까. 마주 앉은 사제 앞에서 일과 밥과 자유와 사랑에 관한 단상을 두서없이 쏟아놓는다. 사제는 넉넉한 웃음만 흘릴 뿐이다.

성공회는 비아메디아(Via Media), 곧 ‘중용의 길’을 가치로 삼는 기독교의 한 종파다. 중용은 어중간한 타협과 다르다. 극단을 배제하고 가치의 중심점을 찾아가는 걸 뜻한다. 천주교·개신교와는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다고 할 수 있다. 공격적인 선교를 하지 않는다는 점은 두 종파와 사뭇 다르다. 대도시 위주로 선교하지 않고 소외된 오지를 선택했다. 교적에 5만 신도 이름이 올라있지만 실제 평균 출석자는 1만여 명이라고 한다. 이 땅에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지만 개신교의 대형교회 하나에도 못 미치는 신도 수다. 전국에 100여 개의 성당이 있는데 ‘복지관’과 ‘나눔의 집’ 같은 사회봉사 시설도 그쯤 된다고 한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 하나라는 게 성공회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사명이라는 주장이다.

교회의 세속화와 물질화, 대형화 추세에 대한성공회는 웬만큼 비켜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중구 정동 서울대성당은 6·10항쟁 때 민주화 성지로 기억된다. 기다란 십자가를 눕혀놓은 형상의 이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은 한국건축가들이 손에 꼽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70년이나 걸린 건축 기간도 우리 근대 건축사에서는 드문 이야깃거리다. 그러나 종교의 다원주의를 말하는 시대에 주목할 만한 장소는 역시 강화성당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른 강화성당은 소박하고 고졸하다. 이곳에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성을 계승한 한국적 교회의 한 가능성을 본다. 해외 선교에 열성인 한국교회가 나아갈 바도 배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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