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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학자 안 키운다, 스티브 잡스 넘어설 인재가 목표”

중앙선데이 2011.08.21 00:47 232호 25면 지면보기
2009년 11월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였다. 정보기술(IT)이라면 세계 최고라던 국내 업계도 아이폰엔 속수무책이었다. 그동안 IT강국이라 자랑해 왔지만, 하드웨어에만 그친 외팔이였음을 절감하게 됐다.

국내 두 번째 미디어랩 선정된 ‘POSTECH 아이랩’ 정윤하 단장

충격이었다. 이에 대응해 2010년 2월 지식경제부는 ‘정보기술(IT) 인력 양성 중기 개편방안’을, 3개월 뒤엔 ‘IT 명품인재 양성사업’을 각각 내놨다. 당시 지경부 사업공고엔 IT 인재에 대한 고민이 잘 담겨 있다. “우리나라 IT 분야는 힘든 업종으로 인식되면서 우수 인재가 진학을 기피해왔다.…세계 정상급 인재로 키워줄 교육환경 미비 등 비전 부재도 우수 인재 기피의 주된 원인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의적인 융합형 인재 없이는 IT 강국을 완성할 수 없음을 실감한 것이다. 이런 고민은 ‘한국판 MIT 미디어랩’을 만들자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소’와 ‘POSTECH 아이랩’이 그 산물이다. 지난달 초 ‘IT 명품인재 양성사업’에 선정된 POSTECH은 아이랩과 함께 ‘창의IT융합공학과’를 신설했다. IT 융합형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인 이 연구소 겸 학과에 입학하면 학사에서 석·박사까지 6년 만에 마칠 수 있다. 내년 3월 출범하는 아이랩은 9월 26일부터 학생 선발을 시작한다. 중앙SUNDAY가 지난 10일 사업단장인 정윤하(사진) 연구부총장을 만나 교육과 연구 계획을 들어봤다.
 
-포스텍 아이랩의 강점은 무엇인가.
“아이랩에선 학생 한 명 교육시키는 데 연간 1억2000만원을 투자한다. 등록금·기숙사비·생활비에 6개월간 미국 뉴욕주립대에 유학 보내는 비용까지 모두 공짜다. 일반 POSTECH 학생들도 90%는 장학금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아이랩 학생은 기존 학생들의 두 배에 이르는 혜택을 받는다. 교과과정도 국내 최단기간이다. 학부를 3년 만에, 석·박 통합과정도 3년 만에 마칠 수 있어 대학 입학 후 박사까지 6년 만에 끝낼 수 있다.”

-너무 짧지 않나. 고2 때 조기 졸업한 뒤 아이랩을 마치면 남들 대학원 1학년 때 박사를 딴다는 얘기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 또 무슨 의미가 있나.
“창의적인 인재는 학교에 오래 있다고 해서 길러지는 게 아니다. 숨은 잠재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고교에서 AP(Advanced Placement, 미국 대학에서 배우는 정규과정을 고등학교에서 실력이 되는 학생들이 미리 이수할 수 있는 제도) 코스를 밟은 학생이라면 학부 3년이 가능하다. 또 방학 기간 동안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별도의 학점을 받을 수 있다. 학부 때 대학원 과목을 미리 이수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교과부가 정한 석·박 통합과정 4년을 3년으로 줄일 수 있다.”

포스텍 아이랩 조감도
-KAIST·고려대·성균관대 등이 이번 선정에서 경합했다고 들었다. POSTECH이 뽑힌 이유가 뭐라 생각
하나.
“POSTECH은 이미 세계 28위에 든 세계 명문 공대다. 하지만 경쟁 학교들은 우리를 ‘지방대’라느니, ‘공대에 웬 융합교육이냐’ ‘국제화가 어려울 것이다’ 하며 공격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세계적 종합대학인 뉴욕주립대와 컨소시엄을 형성해 풀었다. 뉴욕주립대는 내년 3월 인천 송도신도시에 분교를 연다. 미국 뉴욕주립대 본교는 물론 한국뉴욕주립대와도 교류를 통해 POSTECH의 역량을 더욱 키울 예정이다. 포스코의 힘도 컸다. 전체 후원금 1200억원 중 포스코그룹이 600억원을 냈다. 삼성·SK·LG·KT 등 대기업도 참여했다. 결국 교육은 투자다.”

-학부생 20명, 대학원생 20명으로 정원이 단출하다. 어떤 학생을 어떻게 선발하나.
“모두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뽑는다. 우선 모집 정원의 3배수를 서류전형으로 뽑은 뒤입학사정관들이 창의성·잠재력 평가를 할 것이다. 이 과정에 심층면접과 1박2일 워크숍 과정도 들어 있다. 이후 기본적인 영어 수학능력을 보는 테스트를 거쳐 최종 선발할 예정이다. 주입식 교육에 훈련된 학생은 뽑지 않을 것이다. IT산업을 이끌 명품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리더십도 본다. 추종형보다는 선도형이 어울릴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소유하고 자기의 생각을 현실화하는 데 충분한 노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학생을 찾는다.”

-어떤 식으로 가르쳐서, 어떤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건가.
“아이랩은 교수나 학자 될 사람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기업과 연구소에서 IT산업을 선도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자는 거다. 학부의 경우 총 144학점 중 IT 융합전문기술 역량 교육 80학점,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교육 40학점, 가치관 함양 교육 24학점으로 구성된다. 대학원 60학점도 이 세 가지 분야로 나눠 수업과 연구가 이뤄질 것이다. 분명한 건 교과목 이수보다는 교수 지도에 따라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이에 필요한 교과목을 이수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학부의 경우 전체 144학점 중 연구 프로젝트 학점이 40학점에 이른다.

연구는 크게 휴먼웨어 컴퓨팅, 지능형 로봇, U헬스, 지능형 융합자동차 등 7개 분야로 나뉜다. 학부 1학년 첫 학기부터 연구 분야를 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수업과 학사 일정을 짜도록 할 것이다. 미국 뉴욕주립대엔 1학년 후반기 6개월 동안 보내 영어 및 기본소양 중심의 경험을 쌓게 하겠다.”

-롤모델이라는 MIT 미디어랩은 학부생을 뽑지 않는데.
“MIT 미디어랩은 실제로 사용될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뽑는 거다. 우리의 목표는 조금 다르다. IT 분야에 초점을 맞춰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이끌 명품인재를 양성하는 것 그 자체가 목표다. 학부 졸업생 중에도 기업으로 갈 수 있고, 박사를 마치고 연구원으로 갈 수도 있는 거다.”

-그래도 후원한 기업들이 뭔가 결과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MIT 미디어랩은 연구소 최대 행사인 ‘스폰서 위크(Sponsor Week)’를 봄·가을로 열어 후원자들을 초대해 연구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들의 모토가 ‘보여주느냐 아니면 죽느냐(demo or die)’다. 이게 곧 사업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후원 기업들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학교 자체에 투자한다. 특정 연구에 돈을 대는 기존 방식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후원한 학생들을 데려갈 수 있지 않나. 우리도 상용 직전의 제품은 아니지만, 창의적인 연구의 결과물을 후원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미래가 꼭 IT에만 있나. 나노공학(NT)이나 생명공학(BT)도 중요한 미래기술들이다. MIT 미디어랩처럼 융합형 인재를 기르자는 것 아니었나.
“이 사업이 현실적으로 지경부의 ‘IT 명품인재 양성사업’이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NT나 BT는 기존 대학 학과에도 많이 있지 않나. 하지만 연구 분야를 봐도 알 수 있듯 IT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을 접목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1기로 시작한 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소와 학과가 초기 세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세대도 2012학년도 학생 모집은 아주 잘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세대는 본교와 거리도 멀고, 사업에 선정이 되고 나서야 교수를 모으는 등의 이유로 좀 고전을 했다. 우리는 다르다. 캠퍼스 안에 아이랩이 있고, 학생을 뽑기 전에 이미 20명 교수진이 이미 짜여졌다.”

-MIT 미디어랩과 우리나라 명품인재 양성사업의 가장 큰 차이라면 보텀업(bottom-up)과 톱다운(top-down)인 것 같다. MIT처럼 교수들이 힘과 뜻을 합쳐 만든 자생 조직이 아니라, 국가가 기획하고 예산을 마련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톱다운 방식인 만큼 대학과 참여 교수들의 동기 부여도 잘 안 될 것 같다. 일부에선 공대 교수들의 ‘눈먼 돈 나눠 먹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낸다.
“하기 나름 아닌가. 우리는 처음부터 정부와 민간 지원이 있기 때문에 재무구조가 MIT 미디어랩보다 훨씬 건실하다. 정부가 의지를 심어주고, 기업이 후원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훨씬 더 치밀하고 그래서 더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MIT 미디어랩
1985년 미국 보스턴 MIT대에 설립된 융합연구소. ‘인간을 위한 기술’이란 구호를 내걸고 IT를 미디어·예술·의료 등 전 산업에 녹여 학문 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연구를 한다. 23명의 교수와 150명의 연구원이 25개 그룹을 만들어 약 300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과학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허공에서 손으로 글과 그래픽을 편집하는 가상 스크린, 아마존의 전자책 리더기 킨들에 사용되는 전자잉크, 구글의 스트리트 뷰, 개도국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는 100달러짜리 노트북 XO 등이 이곳에서 나온 대표상품들이다. 연구원들은 연구소에 투자하는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독립적이다. 투자자는 연구 결과를 활용하는 혜택을 받지만 연구 결과에 대한 소유권은 없다.  

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소
2010년 8월 지식경제부의 ‘IT 명품인재 양성사업’ 1호로 선정됐다. 당시에도 연세대를 비롯, 서울대·고려대·KAIST·POSTECH이 ‘한국판 MIT 미디어랩’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미래융합기술연구소는 올 3월 인천 연세대 송도캠퍼스에서 문을 열었다. 연구소와 함께 학과로 ‘글로벌융합공학부’를 신설해 학부 3년(정원 20명),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 4년(정원 30명)의 교과과정을 마련했다. POSTECH처럼 전액 장학금을 받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다. ‘애니콜 신화’로 유명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1대 소장으로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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